[뉴스비전e 정선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해피엔딩으로 종영한 판타지 드라마 <하백의 신부 2017>(이하 하백의 신부)는 윤미경 작가의 원작 웹툰 「하백의 신부」 바닷속 수국(용궁)이 아닌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일종의 ‘스핀오프’ 드라마로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스핀오프란, 원작 캐릭터 또는 그 설정을 기초로 새롭게 이야기를 만든 것을 일컫는데, 극 초반 tvN이 시청률 흥행을 거둔 드라마 <도깨비>를 연상시키는 신의 세계와 인간 세상을 오가는 설정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신과 인간의 로맨스를 기초로 한 코믹 판타지 현대극으로 막을 내린 것.

얼마 전 개최됐던 서울역사영화제 프레페스티벌GV에 참석한 이준익 감독도 시나리오나 연출을 꿈꾸는 창작자들의 질문에 "이야기의 규모에 따라 제작비를 정해야 하고, 심리가 스텍터클이라 저예산으로 만들려면 심리극을 찍으면 된다"고 전한 바 있다.

특히 원작 웹툰 「하백의 신부」에서 주 공간인 수국을 구현하는 데 있어 제작비 규모나 기술적인 한계 때문인지 이야기의 장소와 내용이 한정돼,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작가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심리 미스터리 형식으로 그려낸 이번 드라마를 세 가지 측면에서 그 의미를 두고자 한다.

드라마 <하백의 신부>는 신력을 잃고 인간 세상에 건너온 수국의 왕이 될 후계자, 신(神) 하백(남주혁 분)과 신의 종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으로 태어난 가문의 외동딸이자 정신건강 전문의 소아(신세경 분)의 로맨스를 그려냈다.

드라마에는 주인공 하백과 소아, 그리고 둘 사이에 재벌 2세인 후예(임주환 분)가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고 로맨틱 코미디극에서 가장 흔한 삼각관계를 그려내 진부하다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인간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채 한강 둔치에서 은거하는 하백과 이미 인간계에 적응하고 사는 바다의 여신, 무라(정수정 분) 등 신계의 캐릭터와 인간계의 인물 간 문화적 충돌이 자아내는 상황을 코믹하게 그려낸 팝콘 드라마로 다가왔다.

먼저, 극 중 둘 사이의 로맨스 전개에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과 사연들이 드라마 종반부에 서서히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흥미를 더했다.

22일 최종회에 방영된 tvN 월화드라마 <하백의 신부>는 소아의 친구 염미(최우리 분)가 꾼 예지몽이 복선으로 깔리면서 하백과 소아가 새드엔딩의 운명인가 싶었다. 

그러나 종의 문장과 대사제(이경영 분)의 출현 등 극적인 장치를 채택하며 종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과 일생일대 단 하나의 소원을 이루려는 인간의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이전 회차에서 재벌 2세인 후예가 지닌 비밀이 드러나고 주동(양동근 분)이 잃어버린 ‘종의 문장’ 행방은 결정적 단서가 된 것이다.

인류애가 넘치는 아버지 탓에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소아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트라우마가 됐는데, 최종회에서 아버지가 희생하면서 자신을 지켜내려 했다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깨닫게 된다. 

과거 주동을 한 차례 구해줬던 소아의 아버지 성준(정인기 분)은 종의 소원을 이뤄주는 ‘종의 문장’을 주웠고, 그를 한강 다리 난간에 서서 목숨을 끊으려 했던 딸에게 데려다줬고 소아를 구한 뒤 강 밑바닥에 봉인된 채로 죽음을 맞이했던 것.

결국, 고전 명작 「심청전」을 모티브로 한 것 같은 원작과 달리 드라마에서는 하백과 소아를 연결하는 신과 종의 가문 사연에서만 심청전 모티브를 채택하고 그녀의 트라우마가 됐던 아버지의 부재를 따스한 부성애와 가족애로 채워 넣었다.

다음으로, 최근 GV에서 들었던 이준익 감독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관객들이 북유럽 켈트족 신화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리얼리티를 느끼듯, '심청전' 설화는 아시아권에서 하늘과 바다를 왔다 갔다 하는 어마어마한 판타지 대서사로 안데르센보다 훨씬 수준 높다. 이를 소재로 만든 영화 한 편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라고 했다.

드라마 <하백의 신부>는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용궁으로 팔려 가는 마당극이 아니라 신계와 인간계를 넘나드는 거대한 판타지 서사로서 「심청전」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시청률이나 완성도를 떠나 큰 의미를 가질 것 같다.

어떻게 「심청전」과 같은 동양 설화를 발굴하고 원작 웹툰 「하백의 신부」 와 같은 콘텐츠를 심리극이 아닌 판타지 대서사 장르로 연출할지 충무로나 방송콘텐츠 창작자에게 숙제를 남기면서 말이다.

또, 하백이 신력을 되찾기 위해 '싸우면서 정이 든' 소아와 조금씩 가까워지더니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지만, 신석을 모두 되찾은 하백이 신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되면서 사랑에 위기가 찾아온다.

특히, 신력을 써버리면 하백이 신계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지 못하면 사멸하고 인간의 기억 속에서 신의 존재가 지워진다는 대목에서는 tvN의 전작 <도깨비>를 연상시키며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런데도, 수장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려는 소아의 간절한 바람은 '종의 소원 하나 들어주지 못하냐'라고 힐책하는 소아를 위해 신력을 쓰겠다는 하백의 결심을 끌어낸다.

비록 판타지 드라마지만, 이 대목은 아직도 실종된 채로 3년 넘게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결국, 신력을 사랑하는 연인의 소원을 이뤄주는 데 쓰겠다는 하백의 선택은 소아에게 인류애보다 더 큰 부성애를 각인시켰고, 이후 대사제가 나타나 하백 역시도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상을 살릴 수 있는가'란 자신의 과제를 환기했다.

대사제는 하백이 주어진 과제를 이미 수행해 신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일러줬고, 소아에게 “문장의 힘은 더 귀한데 쓰세요”라고 전하자 그녀는 아버지 주머니에서 찾은 종의 문장에 마지막 소원을 빌어 사랑까지 보너스로 얻었다.

이 드라마는 원작의 방대한 분량을 시간의 제약이 있는 영상으로 구현하기엔 무리였고, 종의 문장과 대사제의 출현으로 급하게 마무리한 듯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표현해낸 신세경과 '다크후예'로 변신한 임주환의 열연 등으로 무사히 종영한 드라마 <하백의 신부>가 남긴 세 가지는 설화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 창작에 다가선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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