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아파트와는 무관한 자료 사진임 <사진 / 뉴스비전e>

[뉴스비전e 신승한 기자]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 8월말. 국내 한 일간지의 보도가 우리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다.

바로 한 아파트 경비원들의 처우에 대한 기사였다.

집값은 10억원이 넘는 그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들의 부엌 겸 침실은 화장실이었다.

강남이긴 하지만 준공된 지 34년된 아파트여서 새로 경비초소를 짓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열악한 근무환경보다 더 참기 힘들었던건, 부당한 업무지시에 항의하는 경비원에게 "노망났냐"는 말막과 함께 날아온 인격모독 이었다.

열악한 환경과 관리사무소의 부당한 업무에 대한 내용을 인권위와 청와대에 진정서를 내자, 용역회사는 해당 경비원을 성북구 월곡동의 다른 아파트로 발령 냈다.
 
정말 할 말이 없다. 갑질 중의 갑질이며, 구태 · 적폐가 아닐 수 없다. 
 
창피스럽지만 이것이 2017년 1인당 국민소득 2만 7천632달러로 G20 회원국이지만 인권에 대해선 꼴찌 수준인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인 것이다.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이 발표한 '국제노동자권리지수' 조사결과 우리나라는 3년 연속 최하위인 5등급을 기록했다.
 
이 지수는 141개 국가의 노동법령과 현실을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한 97개 지표별로 평가한 것인데, 우리나라처럼 최저인 5등급 평가를 받은 나라는 알제리, 캄보디아, 인도, 이란, 중국, 파키스탄 등 25개국 뿐이다.
 
도대체 남의 권리를 맘데로 짓밟는 이러한 잘못된 행동과 인식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군사정권의 잔재라는 분석도 있고, 그 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고려 · 조선시대의 잘못된 문화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성찰도 있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최악의 노동인권 후진국'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조심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말 “경비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침해받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정부에 경비원들이 인간다운 근로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도·감독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경비원들이 해고, 전보, 임금 삭감 등 고용 상 불이익을 받고 있지 않은지 실태 조사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또한 서울시는 희망제작소와 함께 ‘행복한 아파트 공동체를 위한 경비원 상생고용 가이드’를 제작했다고 3일 밝혔다. 
 
경비원 상생고용 가이드는 '고용안정을 위한 경비용역 계약' '휴게시간 보장을 위한 근무환경' '입주민과 경비원 상생을 위한 업무' 등 크게 3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 전체 주택 중 아파트 비중이 58%에 달하지만 경비원들의 고용 근로실태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있고, 공동주택관리법상 경비원에 대한 처우개선 노력 등의 의무규정이 현실에 적용하긴 어려운 실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이번 가이드를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아파트 경비원의 근로여건과 처우개선을 위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관련 실무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회도 지난 3월 아파트 근로자들에게 업무 외 부당한 지시를 금지한 '공동주택관리법 일부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통과된 개정안에는 부당한 업무지시를 해도 처벌규정이 없다는 점과 용역업체가 경비원들과 근로계약을 3~4개월 단위로 나눠서 하는 등의 편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내용을 담은 법조항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정책과 법 개정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마음가짐 일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는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이 사회는 혼자서 살아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갑질'을 하는 사람에겐 법적인 처벌과 함께 우리 주변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강한 비난을 퍼부어야 할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어로 '고귀한 신분(귀족)'이라는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가 합해진 것으로 사회적 신분에는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가 따른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의 '갑질문화'를 뿌리뽑기 위해선 정부의 정책과 강력한 법적인 처벌과 함께 상대방- 특히 노동자나 근로자의 권리를 무시하거나 침해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아예 우리 사회에 발조차 디딜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배격하는 시민문화가 형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우리 모두가 매의 눈으로 부정을 감시하는 '감시자'가 되어야 '갑질'과 '적폐'가 없는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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