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생활용품점 계산대 앞에 길게 늘어선 줄과 무인주문 커피 프랜차이즈의 모습<사진 / 시크푸치>

[뉴스비전e 정선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올해 소비자들이 가성비와 검색을 토대로 브랜드나 전문가가 구축해놓은 권위를 위협하는 나비효과를 발생시킬 것으로 소비트렌드를 전망한 바 있는데, 경제 침체와 고용 불안이 장기화하면서 가계 소득은 줄지만 쓰고 싶은 건 많아져 역설적으로 개인의 행복과 욕망을 충족시키는 '탕진잼'이 주목된다.

‘탕진잼’이란 재물을 모두 써서 없앤다는 ‘탕진’과 '재미'의 합성어를 줄인 말로 최근 소비 트렌드로 떠오른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족’이 늘면서 지갑이 넉넉지 않더라도 저가 생활용품점이나 제과점, 디저트카페 등에서 몇천 원 짜리 작은 사치를 누리면서 내 지갑 속의 현금을 아낌없이 소비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올해 한 빅데이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저가 상품 구매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탕진잼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가격 대비 성능에 만족하는 가성비형 소비자는 가격과 기능을 중시해 저렴한 물건을 파는 매장에서 많은 양을 반복적으로 구매하는 소비 행태를 보인 것..

대표적인 곳이 다이소와 지난해 8월부터 중국에서 들어온 미니소 등 과거 일본에서 백엔샵을 연상시키는 이들 매장에는 문구, 완구는 물론 다양한 의류, 주방, 리빙 품목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해 취학 전 유아를 동반한 엄마들의 성지가 되기도 한다.

주택가뿐 아니라 신촌, 홍대 등 88만 원 세대의 20~30대 청년층들도 단골로, 다이소 털이범이란 인터넷 커뮤니티의 회원 수는 1만5천여 명이 되는데, 다이소에서 산 아기자기한 캐릭터 상품이나 소품 사진을 찍어 공유한다.

다음으로 득템형은 수집(콜렉션)과 소장을 위해 탕진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피겨, 미니어쳐 등을 좋아하는 키덜트족이 주로 여기에 속하는데, 자신의 관심사나 취미 관련 정보를 탐색해 '한정판'을 내건 상품을 구매한다.

마지막으로 올해 5월 기준으로는 전국에 1,705개 매장이 개설된 인형 뽑기방이나 최근 급증한 동전 노래방을 찾는 즉흥적인 소비자는 순간적인 기분에 따라 소비하는 성향을 지닌다.

중장년층이 일주일이란 기다림을 통해 복권을 구매하는 것과 비교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않은 청년층에게 인형이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천 원짜리 인형 뽑기나 동전 노래방에서 혼자 또는 친구들과 하루의 고단함을 씻으며 재미를 느끼고 힐링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일 것 같다.

이외에도 최근 블로그 아이템샵이나 모바일이 일상화되면서 메신저 이모티콘이나 게임 아바타 구매 등은 몇백 원 단위를 반복적으로 구매할 수 있어 탕진잼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얼마 전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하고 다음주 개봉 예정인 영화 <청년경찰>도 주연배우 강하늘과 박서준의 표정이 그려진 이모티콘 16종이 출시해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에게 제공하면서 화제가 됐다.

장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이디야커피가 주도하던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 시장에 천원 대의 커피를 내놓으며 진출한 빽다방은 4~5천 원 짜리 브랜드 커피 틈새에서 불황 속 작은 사치의 아이콘이 됐다.

최근에는 천 원대도 무너져 무인주문·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커피 프랜차이즈 '커피만'은 아메리카노를 9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주로 찾는 신촌 대학가에서는 이러한 '커피만'과 함께 테이크아웃 고객에게 아메리카노를 800원에 제공하는 카페도 눈에 띈다.

비록 형편이 넉넉하진 못하지만, 편의점이나 이러한 저가 커피전문점에서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즐길 수 있다면 주머니에 든 한 장의 천 원짜리를 기꺼이 쓴다는 것이 탕진잼의 유혹 아닐까.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오는 길에 방학 기간이라며 스티커 선물을 사달라고 조르는 딸 아이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필자도 생활용품점에 들러 덕후였던 헬로키티 2천 원짜리 스티커를 사들고 왔다.

과거 브랜드 완구가 몇만 원했던 것에 비하면 몇천 원으로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어 퇴근 후 아빠들의 성지로도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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