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정선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오작동으로, 기기결함으로, 때로는 충전 케이블이나 어댑터 등 소모품 고장으로 인해 서비스센터를 찾게 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전문가들은 교체주기가 빠른 스마트폰은 각종 웹 검색, 앱 설치 후 2년을 사용하면 잔 고장이 많아지고 낡아져 새 제품으로 바꾸도록 부품의 수명이 설계돼 있다고 설명한다.

'낡다'는 오래되어 헐고 너절하다는 의미의 말로, 시대에 뒤떨어져 새롭지 못한 상태나 사물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보통 사물이나 물건에 사용되지만, 스마트기기나 앱이 한 달만 지나도 지난 버전이 돼 디지털과 모바일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업데이트' 강박에 시달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 전 '낡음과 새로움'을 주제로 한 주일 설교 때에 담임목사는 몇 해 전 104세로 소천한 방지일 목사가 남긴 명언을 인용했다.

"닳아 없어질지언정 녹슬지 않겠다. 녹스는 것이 두렵지 닳아 없어지는 것은 두렵지 않다"

시간이 지나거나 자주 사용하면 낡아지는데, 이 때문에 우리는 새것으로 보충하고 충전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자동차까지 충전해서 사용하는 시대가 됐으니까.

"인간도 충전해가며 살아야 하는데, 이기적인 탐욕이 앞서 심신이 피로해지며 에너지가 빠르게 소진되는 것은 아닌가"라고 담임목사는 반문했다.

SF영화(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인간은 불멸의 꿈을 이루고자 인공지능(AI)로봇을 만들고 홀로그램과 대화도 하며 계속해 새 버전의 복제 인간을 양산하기도 한다.

최근 개봉한 SF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30년 후 미래에 희망이 사라져버린 디스토피아, 낡아버린 세상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추적하는 복제 인간이 등장한다.

'경계'라는 담론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진실과 거짓, 인간과 복제 인간, 기억과 망각, 복종과 저항 등 경계라는 담론을 계승하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복제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감시와 통제의 시스템에 저항하는 삶의 태도를 성찰케 한다.

라이언 고슬링이 주인공 K를 맡아서 그럴까, 그에게 연민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영화 <라라랜드>에 하드보일드한 감성을 덧입힌 SF 탐정극처럼 다가온다.

<혹성탈출> 시리즈에서 유인원의 진화를 떠올리며 인간의 감정은 물론 임신까지 가능해진 복제인간의 진화에 관한 진실 혹은 거짓을 담론으로 제기하는 것 같다.

서정적인 SF 대서사시 형식으로 그려낸 이 작품에서 감독은 30여 년 전 원작에 대한 헌사를 잊지 않는데, 삶의 태도에 관해 질문을 던지며 우리에게 잠시 멈춰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철학적 사유의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우주 재난을 소재로 했던 <그래비티>에 세상을 조종하려는 권력자들의 욕망을 새겨넣은 듯한 SF 블록버스터 <지오스톰> 역시 삶의 태도에 관한 질문이 돋보인다.

기후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지구촌의 각종 재난을 막으려고 '더치보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인공위성에서 기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지만, 권력욕에 사로잡힌 이들의 손에서는 엄청난 우주재난과 자연재해(지오스톰), 대학살이 발생하고 이를 막고 생명을 구하려는 인간들의 사투가 그려진다.

지난 23-24일 양일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넥스트 콘텐츠 컨퍼런스 2017'에 참석한 영화 <슈퍼배드><미니언즈>의 연출자 코뱅 감독은  "AI가 트렌드이지만, 스토리텔링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진 않을 것"이라며 "기계나 컴퓨터로 만들어진 작품에서는 감흥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AI, 홀로그램, 인공위성 등 발전된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SF영화에서 인간 본성의 가장 근본적인 휴머니티를 성찰케 하는 것은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달이나 재난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낡은 생각을 떨치고 새로운 삶의 태도를 보일 계기라고 전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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