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다이닝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일본·호주·인도 정상들과 대중 안보 연합체 '쿼드(Quad)' 첫 정상회의를 화상형식으로 가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제공.
지난 3월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다이닝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일본·호주·인도 정상들과 대중 안보 연합체 '쿼드(Quad)' 첫 정상회의를 화상형식으로 가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제공.

20세기 냉전의 시대에는 국가간 공조를 통한 국제 협력이 우선시됐다. 지역내 공동의 힘을 합하는 이른바 안보 블록(security blocks) 개념이다. 육상 인계철선 혹은 해상 도련선 등을 연결해 스크럼을 구축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팽창주의에 대비해 나토가, 동북아시아에서는 북·중·러로 대변되는 북방 삼각과 한·미·일 남방 삼각이 안보 블록을 통해 대립각을 유지해 왔다.

블록의 개념이 바뀐건 미국과 중국 등 'G2'가 두드러지게 부상한 21세기 들어서다. 기존 미국 중심의 국제 경제의 중심 축은 중국의 급성장으로 미국과 중국의 양강 구도가 뚜렸해졌다. 

G2의 대립은 최근 디지털과 기술로 옮겨 붙는 모양세다. 디지털 가속화로 영역과 영토를 초월한 사이버 공간상의 플랫폼 연결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중간 코어 테크 관련 공급망 구축 경쟁은 기존의 안보 블럭 개념에 대한 대전환을 예고한다. 

4차산업 혁명의 핵심은 기국제적 기술 표준시스템 구축과 같은 기술 기반이다. 군사력을 앞세운 힘의 논리가 아니라 총성 없는 '슬기로운' 전략과 실천이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특히 디지털 경제시대 진입은 국가 간 영역 구분이 사라지면서 경제·기술동맹 관계를 통한 패권의 우위성을 유지하려는 추세로 전환되고 있다. 구시대적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 놓은 표준화 선점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와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협의체) 간의 글로벌 경쟁은 미래 패러다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다. '신형 동맹' 구축을 위한 '팍스 아메리카'와 '팍스 차이나'의 대결이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대륙의 패권을 손에 쥐자마자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거듭 강조해 왔다. 육상으로는 중국 당나라 시대, 해상으로는 명·청 시대의 국력을 회복하는 ‘팍스 차이나’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었다. 

'일대일로'는 이를 성공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시진핑 주석의 글로벌 프로젝트이자 개혁과 개방의 건실한 기초가 될 중국판 '마셜 플랜'이다. 중국 중심의 세상, 즉 '중국몽' 구현의 세부전략이자 행동강경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중국과 유럽, 동남아, 아프리카 등을 잇는 고속도로와 철도, 항만 등 대규모 인프라 구축 지원과 함께 ‘차이나 스텐다드’ 확산과 첨단 분야 가치사슬 통합 등을 통해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갈등은 해석 차이에서 나온다. 미국이 시 주석의 이와 같은 창대한 플랜을 중국 중심의 세계 경제 패권 이양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견고한 기반을 구축하고 건국 100주년에 글로벌 패권을 달성하겠다는 중국의 행보가 미국을 긴장 시키면서 경제, 외교 등 곳곳의 문제 발생을 야기시키는 형국이다.

미국도 중국의 행보를 지켜보지 많은 았았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무기로 미국 교역 문제로 중국을 압박했지만, 중국사정에 정통하고 노련한 바이든 정부 출범으로 미중 갈등은 제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투키디데스 함정'의 전조 현상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정부의 중국 견제 새 기조중 하나는 기술견제다. 중국을 정밀하게 견제할 수 있는 좀 더 실용적인 공동운명체 성격의 블록을 쌓으려는 계획이다. 당연히 이를 위해서는 방벽 설치와 교류차단과 봉쇄가 주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경제와 안보를 같이 묶다보니 정경분리가 더 이상 통하지가 않는 상황으로 전환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G2 사이에서 끼여 있는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의 유통기한 만료가 불보듯 뻔한 상황에 이른것이다. 무엇보다도 중국 스스로가 ‘경중’에만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쿼드 관련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선임국장은 지난 7일 열린 한 세미나에서 "쿼드는 아시아판 나토도, 안보동맹도 아니다"고 단언했다. 이를 뒷받침 하듯 지난 3월 쿼드 4개국 정상회담의 공동성명문에는 ‘중국(China)'과 ‘군사(military)’라는 단어는 없고 군사와 관련된 '안보(security)'라는 핵심 키워드도 딱 세 번, 언급되었다.
 
국제적인 공공재적 이슈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과 기후변화, 핵심 기술, 테러방지, 신형인프라 투자, 인도주의적 지원, 재난 구제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국제적인 협력을 강조 하고 있다.

이는 쿼드는 미국이 일본·호주·인도와 연합해 중국 ‘포위용 군사동맹’ 혹은 ‘안보협력체’라는 우리의 선입견을 완전히 뒤엎는 개념이다.
 
향후에는 첨단 분야의 가치사슬을 누가 지배하느냐가 미래 패권을 쥐게 된다. 문제는 ‘하나의 중국’을 흔드는 대중전략으로 미중갈등이 더욱 첨예해 지고 있다. 이에 동아시아가 과거 냉전 시대로 회귀하는 추세로 진전될 조짐이 높다.

우리 입장에서 미중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들 수는 없다. 우리 국익의 관점에서 가까운 이웃 중국에게는 원칙을 세워 좀더 당당하게, 미국과는 동맹국 위상에 걸맞게 담대해야 한다.

G2 가 추진하는 ‘쿼드’와 ‘일대일로’프로젝트에 사안별 적극적 참여를 통해 미중 외교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안보문제는 북한 비핵화를 단호하게 억지하면서 점진적· 실용적 접근전략으로 북한의 위협 억제에만 초점을 둔 ‘스테이터스 쿼(status quo·현상 유지)’ 로 리스크를 최소화 하되 경제협력은 극대화하는 방향을 모색하여야 한다.
 
미중 갈등의 파고를 잘 넘어야 한다. 미사일 주권 확보를 계기로 과감한 방위력 체질 개선과 함께 첨단 산업영역에서 기술력 제고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우리의 가치를 높이는게 곧, 생존비책이다. 전략과 전술도 중요하지만 '슬기로움'을 반드시 새겨봐야 할 때다.

이상기 논설위원(한중지역경제협회장)  sgrh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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