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할머니들이 큰스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머리 모양이 꼭 인디언 같습니다. 할머니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하얗게 샌 머리를 땋은 것이 곡절의 인생을 정돈해놓은 듯합니다. 알렉스 김 아이들의 꿈을 찍는 포토그래퍼. 내셔널지오그래픽 인물상 부문 수상자. 알피니스트. 신세대 유목민. 파키스탄 알렉스초등학교 이사장. 원정자원봉사자. 에세이스트. 이름은 알렉스이지만 부산 사투리가 구수한 남자. 스무 살 때 해난구조요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무작정 배낭을 메고 해외로 떠났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선을 사로잡는
[뉴스비전e] 할아버지인지 할머니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늙은 어른이 길가에 다소곳이 앉아 말린 꽃을 팔고 있었습니다.말을 걸고 나서야 할머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꽃을 설명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만큼은 예쁘게 잘 마른 꽃처럼 아름다웠습니다.나는 꽃을 집어 들고, 소녀처럼 미소 짓는 할머니에게 인사했습니다.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아름다우세요. 알렉스 김 아이들의 꿈을 찍는 포토그래퍼. 내셔널지오그래픽 인물상 부문 수상자. 알피니스트. 신세대 유목민. 파키스탄 알렉스초등학교 이사장. 원정자원봉사자. 에세이스트. 이름은 알렉스이지
[뉴스비전e] 해발 2,500미터부터 고산병이 시작됩니다.이 마을은 해발 4,000미터에 있습니다.너무 급하게 올라가면 고산증상이 오기 때문에 나는 적응을 위해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 한숨 돌리고 있었습니다.그때 우연히 내다본 창밖으로 큼지막한 물통을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아이가 보였습니다.손이 발갛게 부르튼 아이가 들고 있는 양동이 안에는 넘칠 듯 찰랑이는 물이 들어 있었습니다.조그만 아이가 들기에는 힘들어 보였습니다.아이는 1미터를 가다 서고 또 1미터를 가다 서며 숨고르기를 반복했습니다.순간 내가 걸릴지도 모를 고산병보다
[뉴스비전e] 등산을 꺼리는 사람들은 산은 안에서 보는 것보다 밖에서 보는 것이 더 좋다고 합니다.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트레킹을 하며 산이란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산을 오르는 이유는 나에게로 집중되는 에너지를 느끼기 위해서입니다.산을 통해 내 자신을 보는 겁니다. 땀을 흘리고 거친 숨을 내쉬며 거대한 자연 앞에 가장 솔직해지는 나를 봅니다.백 명이 함께하는 등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시에 올라가도 시간이 지나면 산은 사람들을 떨어뜨려 놓습니다.산뿐 아니라 5천만 명이 사는 대한민국도 다 같이 있지만 결국 자기만의 색깔로 혼자 살아
[뉴스비전e] 마차푸차레. 물고기 꼬리 지느러미를 닮았다고 해서 영어로는 피쉬테일이라고 부르는 산입니다.이 산은 아직 등정 허가가 나지 않았습니다. 성스러운 산이기 때문입니다. 네팔 사람들은 이 산이 보이면 멀리서도 산을 향해 기도합니다. 성스러운 산 아래에는 성스러운 물이 흐릅니다. 사람들은 성산과 성수 사이를 걷고 있습니다.이 구간은 오르기가 무척 힘듭니다. 흔들리는 바람 속에 몸과 카메라를 겨우 가누며 가이드에게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가이드는 성산이 제 모습을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뉴스비전e] 티베트 사람들은 눈이 맑습니다. 무엇을 닮은 것이 분명한데 딱히 무엇이라 말할 수 없었습니다.이곳 사람들의 독특한 하늘의 장례의식인 조장을 목격한 것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해발 4,000미터에서 치러진 낯선 장례는 산소와 기운을 한꺼번에 빼앗아간 것 같았습니다.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힘겹게 산을 내려오다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여자아이를 만났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한 걸음 한 걸음 그 아이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아이는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었고 지친 나를 이끈 아이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
[뉴스비전e] 조장(鳥葬)은 새에게 장사지내는 것입니다. 새가 날아다니는 하늘로 가는 장례입니다.티베트 사람들은 모두 하늘로 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조장을 톈장(天葬)이라고 부릅니다. 하늘의 장례입니다.나는 리탕이라는 마을에서 조장을 목격했습니다. 티베트 사람들이 아무데서나 조장을 치르는 것은 아닙니다. 빨간 부적이 그려진 비석을 세워놓은 곳에서만 해야 합니다.라마승이 조장 의식을 진행했습니다. 시신이 장례식장으로 옮겨지면 대형 맹금류인 콘돌들이 하나둘 시신 주위로 모여듭니다. 시신의 목에다 붉은 천을 묶고 그 끝을
[뉴스비전e] 동이 터오는 시각 카오산로드의 택시기사는 트렁크 문을 베개 삼아 잠이 들었습니다.혹시나 차 안에서 잠이 들어 손님을 못 태울까 조바심이 느껴집니다.나는 잠이 든 아저씨를 깨웠습니다. 아저씨는 단잠을 깨운 나에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빠이 나이 크랍? (어디 가세요?)”“짜 빠이 까올리 크랍! (한국 가 주세요!)”“빠이 다이 크랍. (갈 수 있습니다.)”아저씨의 신나는 목소리를 들으니 정말 한국까지 데려다줄 것 같습니다. 알렉스 김 아이들의 꿈을 찍는 포토그래퍼. 내셔널지오그래픽 인물상 부문 수상자. 알피니스트
[뉴스비전e]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좋은 친구가 있었습니다.즐겨찾던 바에서 친구의 노래를 처음 들었습니다.목소리에 반해 먼저 말을 걸었고 우리는 곧 친구가 되었습니다.시내를 걷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도 했습니다.약속하고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카오산로드에 가면 그 친구가 노래를 하는 바에서도 만나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습니다.연락처도 몰랐지만 우리는 분명 친구였습니다.해마다 카오산로드를 찾았던 나는 다시 친구와 길에서 마주쳤습니다.친구는 길에서 기타를 치는 다른 사람과 함께 공연하고 있었습니다.근처에 있는 바에서 일하는
[뉴스비전e] 내가 카오산로드로 간다는 소리에 아는 분이 현지에 있는 자신의 집 한 층을 내주었습니다. 호텔보다 넓고 좋은 방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가 없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여행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며칠 뒤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카오산로드에서 가장 싼 방을 찾아 나섰습니다. 나는 80바트짜리 게스트하우스를 구했습니다. 방에는 선풍기 팬 두 개와 침대 다섯 개, U자로 휜 매트리스, 그리고 베개 하나뿐이었습니다. 방이라기보다 창고에 가까웠습니다. 머리 위에 있는 선풍기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방 안 가득했고, 밤에는
[뉴스비전e] 라오스에서 선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선배는 푸켓으로 출장 왔는데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부탁했습니다. 나는 곧장 버스를 타고 서른여덟 시간이 걸려 푸켓에 도착했습니다.먼 길만큼 도와줘야 할 일도 많았습니다. 일주일을 고생하고 300달러를 받았습니다. 방콕으로 돌아온 나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한국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수박주스를 한 잔 시켜 놓고 잠깐 나갔다 돌아와보니 내 자리에 모르는 여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내가 자리 주인이라고 하자 그녀는 가방을 치우며 부산 사투리로 사과했습니다. 타국에서
[뉴스비전e] 우기에 섬으로 갔습니다.상상했던 에메랄드 빛 바다와 모래사장은 없었습니다.해변이 아닌 방갈로에 누웠습니다.빗소리 사이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맑은 소리가 들려 문을 열었습니다.비를 맞고 있는 모든 것을 둘러보며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바나나잎에 빗방울 듣는 소리였습니다.바나나잎에서 다시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는더욱 청아했습니다.햇볕이 쨍쨍한 날 해변에 누워비키니 입은 여자들을 보는 것에 비할 수 없었습니다.여행하기 좋은 날이 따로 있겠습니까.화창한 날에는 바나나잎에 빗방울 듣는 소리의 즐거움을알 수 없
[뉴스비전e] 기간 여행을 하려면 내 생활은 포기해야 합니다.인생은 비워야 채워진다지요.채운 상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식어버린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고뜨겁던 커피 맛이 되살아나지는 않습니다.묽고 미지근해질 뿐입니다.식은 커피를 따라 버리고 뜨거운 커피를 넣어야 하는 것처럼여행도 자기를 내려놓고 일상을 포기해야 떠날 수 있습니다.그래야 여행을 통해 우리의 삶이 더 뜨거워질 수 있습니다. 알렉스 김 아이들의 꿈을 찍는 포토그래퍼. 내셔널지오그래픽 인물상 부문 수상자. 알피니스트. 신세대 유목민. 파키스탄 알렉스초등학교 이사
[뉴스비전e] 푸켓에 있는 여행사에서 일할 때입니다. 피피섬으로 배를 타고 들어가는데, 배꼬리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그중 한 여자가 나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녀는 브라질 국기가 그려진 팔찌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발에도 브라질 국기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가 브라질 사람이라고 확신했습니다.나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그녀가 나를 쳐다보는 바람에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녀는 불쾌한 표정 대신 미소를 지었고 나는 자신감을 얻어 그녀에게 다가갔습니다.“브라질에서 오셨나요?”“브라질을 좋아하긴 하는데 브라질 사람은 아니에요. 이
[뉴스비전e] 여기는 태국입니다. 여자는 사랑에 빠졌습니다.그녀의 눈이 말해줍니다.남자가 부릅니다.I want nobody nobody but you.난 다른 사람은 싫어.니가 아니면 싫어. 알렉스 김 아이들의 꿈을 찍는 포토그래퍼. 내셔널지오그래픽 인물상 부문 수상자. 알피니스트. 신세대 유목민. 파키스탄 알렉스초등학교 이사장. 원정자원봉사자. 에세이스트. 이름은 알렉스이지만 부산 사투리가 구수한 남자. 스무 살 때 해난구조요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무작정 배낭을 메고 해외로 떠났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선을 사로잡는
[뉴스비전e] 태국에서 슬로우보트로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가려면 1박2일이 걸립니다.우리는 가격은 두 배지만 여섯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스피드보트를 탔습니다.비싼 스피드보트를 탄 보람도 없이 프로펠라는 두 번이나 깨졌고 결국 배에서 내려 근처 숙소에서 하룻밤 자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배에는 여러 나라 사람이 있었지만 나와 칠레 사람들만 언성을 높여 따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친구가 되었습니다.라오스에서 칠레 친구들과 다시 마주쳤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함께 술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섯 명이었는데 그중 여자가
[뉴스비전e] 뜨는 해보다 지는 해가 뜨겁습니다. 해가 지면서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입니다.붉은 노을이 저기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마음도 뜨겁게 물들이지 않을까요.순간 두 사람은 세상의 중심이 됩니다.두 사람과 지는 해 말고 아무도 없습니다.내가 저 남자라면 옆에 있는 여자가 아무리 못생겼다 해도 입술을 물들였을 겁니다. 알렉스 김 아이들의 꿈을 찍는 포토그래퍼. 내셔널지오그래픽 인물상 부문 수상자. 알피니스트. 신세대 유목민. 파키스탄 알렉스초등학교 이사장. 원정자원봉사자. 에세이스트. 이름은 알렉스이지만 부산 사투리가 구수한 남
[뉴스비전e] 신혼부부가 바닷가에 앉아 웨딩촬영을 하고 있습니다.두 사람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좋을까요.나는 함께 배낭여행을 하며 웨딩촬영을 하고 싶습니다. 살다보면 지겨운 날도 있을 겁니다.그럴 때 같이 배낭을 메고 언덕에 올랐던 사진, 현지 사람들과 허름한 시장에 앉아 밥을 먹던 사진, 꼬질꼬질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용서하게 됩니다.많은 것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느라 힘이 듭니다. 추억은 다릅니다. 추억은 많을수록 행복해집니다.사진은 추억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사진은 잊고 살던
[뉴스비전e] 황금빛 노을 속에 있는 뱃사공이 행복할까요.황금빛 배를 보고 있는 내가 더 행복할까요.이 사진을 보고 있는 당신이 가장 행복합니다. 알렉스 김 아이들의 꿈을 찍는 포토그래퍼. 내셔널지오그래픽 인물상 부문 수상자. 알피니스트. 신세대 유목민. 파키스탄 알렉스초등학교 이사장. 원정자원봉사자. 에세이스트. 이름은 알렉스이지만 부산 사투리가 구수한 남자. 스무 살 때 해난구조요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무작정 배낭을 메고 해외로 떠났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이든 카메라에 담았다. 하늘, 햇빛,
[뉴스비전e] 캄보디아는 한낮에 혀가 바닥까지 내려올 정도로 무덥습니다.하지만 비가 오면 자연은 또 다른 색을 만들어냅니다. 촉촉해진 흙에 어느새 이끼가 올라와 사원을 덮습니다.요즘 이곳에 무너져가는 사원을 보수해준다는 명목으로 외부에서 많은 기술자가 들어와 있습니다.보수를 할수록 비대칭의 균형은 사라지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반듯한 모양의 사원이 만들어집니다.수천 년에 걸쳐 자연이 만들어놓은 한 폭의 수채화 속에 캄보디아 수리공이 앉아 있습니다.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캄보디아 왕국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은 것일까요. 알렉스 김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