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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김의 포토에세이(52) 요이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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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김의 포토에세이(52) 요이치에게
  • 알렉스 김
  • 승인 2019.04.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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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비전e] 내가 카오산로드로 간다는 소리에 아는 분이 현지에 있는 자신의 집 한 층을 내주었습니다. 호텔보다 넓고 좋은 방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가 없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여행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며칠 뒤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카오산로드에서 가장 싼 방을 찾아 나섰습니다. 나는 80바트짜리 게스트하우스를 구했습니다. 방에는 선풍기 팬 두 개와 침대 다섯 개, U자로 휜 매트리스, 그리고 베개 하나뿐이었습니다. 방이라기보다 창고에 가까웠습니다. 머리 위에 있는 선풍기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방 안 가득했고, 밤에는 모기 때문에 잘 수가 없었습니다.

내 침대 바로 앞 침대는 일본 여자가 쓰고 있었습니다. 이름이 토모미라고 했습니다. 토모미는 인도네시아인 남자친구가 있었고 인도 전통 춤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성격이 차분한 토모미는 나에게 많은 얘기를 해주었고 우리는 친해졌습니다.

그녀가 귀국하는 날 공항으로 배웅을 갔습니다. 토모미는 버스에서 내린 남자와 일본어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둘은 여행지에서 알게 된 사이였습니다. 일본 남자는 토모미에게 가장 싼 숙소를 물었고 토모미는 나를 소개하며 함께 가라고 했습니다. 일본 남자의 이름 은 요이치였는데, 나는 그를 숙소로 데리고 왔습니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숙소를 보고도 그는 별로 놀라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이튿날부터 우리는 함께 여행을 다녔습니다. 요이치는 늘 싼 음식을 찾아다녔습니다. 맛있는 길거리 음식이 넘쳐나는 카오산로드에서 가장 싼 밥을 파는 할머니 가게만 갔습니다. 요이치와 함께 나도 할머니 가게의 단골이 되었습니다. 흰밥 위 오믈렛, 태국식 간장 소스가 전부였지만 우리는 맛있게 나눠먹었습니다.

캄보디아로 가기 위해 여행사를 찾아다닐 때였습니다. 섭씨 40도가 넘는 더위에 우리는 가장 싼 여행사를 찾기 위해 스무 곳이나 돌아다녔습니다. 나는 더 이상 더위와 갈증을 참지 못하고 눈에 띈 스타벅스로 들어갔습니다. 요이치는 좀 더 할 일이 있다며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한 다음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나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주문했습니다. 한 잔에 120바트였습니다. 방 값보다 더 비싼 커피였습니다. 하지만 여행사를 스무 군데나 찾아다니며 지친 몸에게 시원한 커피 한 잔쯤은 대접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리를 꼬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요이치였습니다.

“알렉스 형님, 20바트 더 싼 여행사를 찾았어요!”

요이치는 나와 친해진 이후 깍듯하게 형님이라 불렀는데 처음으로 나는 형님이라는 소리가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120바트짜리 커피를 마시며 쉬는 동안 요이치는 20바트를 아끼기 위해 두 시간 동안 여행사를 더 찾아 헤맨 것입니다.

요이치는 나에게 진짜 배낭여행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요이치가 알아낸 여행사를 통해 캄보디아로 갔습니다. 앙코르와트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가 닦여 있지 않았습니다. 외국인이 가득 찬 버스는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요이치는 안마의자에 앉아서 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덥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외국인들은 멀미 때문에 거의 탈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차가 멈췄고, 기사는 엔진이 고장 났다며 승객들에게 모두 내리라고 했습니다. 머리에 손가락을 넣으면 흙먼지가 잡힐 정도로 뿌연 길에 요이치와 나는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멀뚱히 서 있었습니다. 그때 흙탕물이 가득한 길 위로 반딧불이 한 마리가 날아갔습니다. 반딧불이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 본 요이치가 말했습니다.

“형님, 우리 여기에 누웁시다.”

진흙탕 속에 우리는 나란히 누웠습니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은 상관없었습니다. 그렇게 누워서 금방이라도 얼굴 위로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바라봤습니다.

그곳에서 요이치와 나는 소중한 추억 한 장을 만들었습니다.

요이치의 고향은 나고야였습니다. 우리는 헤어지면서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습니다. 나는 요이치에게 부산으로 놀러오라고 했고 요이치는 나에게 나고야로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악수를 하고 돌아섰습니다. 순간 등 뒤에서 요이치가 나를 불렀습니다.

“형님!”

내가 돌아보았을 때 요이치는 길바닥에 넙죽 엎드려 큰절을 했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요이치는 나와 함께 여행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여행을 하며 배운 쪽은 바로 나였습니다.

 

 

 

알렉스 김 

아이들의 꿈을 찍는 포토그래퍼. 내셔널지오그래픽 인물상 부문 수상자. 알피니스트. 신세대 유목민. 파키스탄 알렉스초등학교 이사장. 원정자원봉사자. 에세이스트. 

이름은 알렉스이지만 부산 사투리가 구수한 남자. 스무 살 때 해난구조요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무작정 배낭을 메고 해외로 떠났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이든 카메라에 담았다. 하늘, 햇빛, 바람, 구름, 그리고 사람들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 

자연의 위대함에 겸손을 배우고, 하늘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욕심을 내려놓고 소통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은 스승이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척박한 환경과 가난 때문에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파키스탄에 알렉스초등학교를 지었다. 

65명의 학생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자선모임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여행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을 나누고 현지 아이들을 돕기 위해 서울에서 ‘알렉스 타이하우스’라는 태국음식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봉사단을 조직해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고산지역 오지마을로 식량, 의약품, 학용품을 전달하고 있다. 

현재 파키스탄 오지에 두 번째 알렉스초등학교를 짓기 위해 후원회를 조직하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 머물며 김만덕기념관이 추진 중인, 지역 어르신 1,000명에게 장수사진을 찍어주는 ‘어르신 장수효도사진 나눔사업’에 재능기부 포토그래퍼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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