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대한민국 탄소중립선언 '더 늦기 전에 2050'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제공.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대한민국 탄소중립선언 '더 늦기 전에 2050'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제공.

"탄소중립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기업들이 어려워하는 게 현실입니다. 정부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주시길 당부하며 새로운 정책 마련에 신경써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회장(SK그룹 회장)은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를 찾은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탄소중립에 대한 기업들의 협조가 필요한 시점이란 견해를 밝히자 "기업들의 입장도 이해해 달라"며 이 같이 답했다. 

문 장관의 이날 발언은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데 따른 것으로 탄소중립과 그에 따른 정책 이슈에 대한 대기업들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와 기업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로 읽힌다는 시각도 있다.  

'탄소중립'이 화두다. 정부든 기업이든 마찬가지다. 탄소중립이 환경을 넘어 세계 경제와 통상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기준 한국을 포함한 세계 약 120여개 국가가  '탄소중립'을 선언했거나 추진 중이다. 

◇ 유럽·미국·중국 등 '탄소 통상' 주도권 경쟁 본격화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한 줄이는 한편 석유와 석탄, 가스 등을 사용하지 않는 경제사회를 이뤄내겠다는 세계적 공동 목표중 하나다. 지구 생태계라는 환경적 접근에서 시작된 이 논의가 세계 경제의 화두로 떠오른 건 온실가스 배출량과 직결된다.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른바, 넷제로(Net-Zero) 계획의 핵심은 온실가스 통제다. 지난 2019년 유럽연합(EU)이 탄소중립을 위한 '그린 딜'을 발표하자 1년뒤 중국은 "오는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미국도 빠르게 움직였다. 특히 미국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행정부가 지난 2020년 11월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공식 탈퇴한 상태란 점에서 더욱 그랬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올해 2월 해당 협정에 재 가입했고 지난 4월22에는 '세계기후정상회의'의 의장국을 자청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까지 완전한 탄소중립에 나서겠다"고 선언하면서 '탄소중립 세계화'에 합류한 상태다. 

이렇듯 세계 주요 국가들이 앞다퉈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에 나서는 이유는 탄소중립, 즉 탄소배출 관리와 이산화탄소 절감 이슈가 지구 환경 문제를 넘어 세계 경제와 무역 통상의 새로운 질서가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수 년이내 이른바 '탄소통상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 상세 정책 실종, 무늬만 '탄소중립'?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우리 정부의 갈 길은 멀다. 국제사회를 향한 당당한 정책 발표를 뒤로한채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당초 상향 조정을 검토하다 결국 '유보'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막무가네 식' 규제가 기업들의 반발과 경제지표 하락 등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인식한 결과란 평가다.

국제사회의 압박은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8년 영국의 한 기후변화 전문 매체는 '세계 4대 기후악당'이라는 제하의 기획보도를 통해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와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4대 기후악당국'으로 지목했다. 영국의 기후변화 비정부기구 기후행동추적(CAT)은 "한국은 기후변화 해결에 전혀 노력하지 않는 국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무늬만 '탄소중립'을 외칠 뿐 실효성 있는 정책과 규제, 실천 등은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게 CAT 측 설명이다. 현실은 더욱 녹록치 않다. 실제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중 탄소 배출량 증가율 1위 국가란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도 OECD 주요 국가들중 꼴찌에서 1~2위를 다툰다.

더 큰 문제는 국제 무역 시장에서 탄소세 적용이 임박했다는 점이다. 유럽연합은 빠르면 오는 2023년부터  '탄소 국경세' 도입을 추진중이다. '탄소 국경세'는 탄소 국경 조정 등을 기준으로 수입상품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탄소량을 추산해 그에 대한 비용을 세금으로 부과하는 통상 세금을 말한다.

현재 스위스와 스웨덴 등 약 50개국이 탄소세를 시행 중이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도 '파리기후변화협약' 재 가입을 계기로 '탄소 국경세' 도입과 시행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탄소 국경세' 입장에 동의하고 있는 일본과  정부도 세부 정책 마련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 정부도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산업과 에너지 분야 탄소중립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구성하는 등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에너지산업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노력이 실질적 효과로 나타나기엔 상당기간과 갈등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의 동참이 절실한 만큼 정부의 굳은 의지만으로 '탄소중립'이 실현되기엔 역부족이란 이유에서다. 

복수 이상의 산업정책 전문가는 "현재 정부의 로드맵은 마치 답을 정해 놓고 그 틀안에 퍼즐을 맞춰 넣는 듯한 이론상 계획에 그치지 않는다"며 " 에너지와 산업, 교통 등 등 산업 전반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세부 정책 마련과 실천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최진승·차승민 기자 jschoi@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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