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오른쪽) 법무부 장관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권력기관 개혁 관련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추미애(오른쪽) 법무부 장관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권력기관 개혁 관련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의 '정직 2개월 처분'이 나온 당일 즉각 재가(裁可)에 나선 것은 서둘러 '추미애·윤석열 갈등 국면'을 매듭짓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징계위 운영의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강조해왔던 만큼, 그 결론을 그대로 집행함으로써 여론 악화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뜻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재가 직후 "검찰총장 징계라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게 된 데 대해 임명권자로 무겁게 받아들인다.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또 "검찰이 바로 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검찰총장 징계를 둘러싼 혼란을 일단락 짓고, 법무부와 검찰의 새로운 출발을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윤 총장 측이 징계위의 결론에 대해 행정 소송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어, 중장기 소송전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제청 직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전격적인 사의 카드를 꺼내들면서 여권을 중심으로 윤 총장에 대한 사퇴 압박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윤 총장 측 움직임과 여론의 추이 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징계위는 밤샘 논의 끝에 이날 오전 4시께 윤 총장에 대해 정직 2개월의 처분을 의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부터 6시10분까지 추 장관으로부터 징계위 결과를 제청받고, 오후 6시30분 그대로 재가하면서 징계를 확정지었다.

윤 총장에 대한 징계 효력은 문 대통령 재가 직후 바로 발생한다. 징계위 결론이 나온 직후 14시간30분만에 속전속결로 재가 절차까지 마무리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앞서 윤 총장에 대한 징계위 결론을 그대로 집행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시사했다. 검사징계법상 대통령은 장관의 제청을 그대로 따를 뿐, 징계 처분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었다.

정만호 국민소통수석은 "검사징계법에 따라 법무부 장관이 징계를 제청하면 대통령은 재량 없이 징계안 그대로 재가하고 집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속전속결 재가 배경에는 이슈 블랙홀이 돼버린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 국면을 서둘러 정리해야 한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언제까지 갈등 국면을 끌고 갈 수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 국면에서 촉발될 수 있는 정치적 후폭풍과 여론 악화 부담 역시 고려 지점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문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는 정부 출범 이후 연일 최저치를 찍고 있다.

추 장관이 제청 직후 전격적인 '자진 사퇴' 카드를 꺼내들은 것 역시 악화된 여론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 출범 등 추 장관의 성과를 언급하며 "추 장관 본인의 사의 표명과 거취 결단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앞으로 숙고해 수용 여부를 판단하겠다. 마지막까지 맡은 소임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사실상 추 장관의 사의 표명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는 징계위 처분에 따른 여론 파장을 예의주시할 예정이다. 윤 총장 측이 징계위 결정에 대해 법적 대응을 시사하면서 '진흙탕 싸움' 번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추 장관의 사퇴 카드가 향후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윤 총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임기제 검찰총장을 내쫓기 위해 위법한 절차와 실체 없는 사유를 내세운 불법 부당한 조치"라며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잘못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권에서는 이날 일제히 윤 총장 사퇴를 압박했다. 신동근 최고위원은 "검찰총장 스스로가 정치적 중립을 어겨왔다"며 "여기까지 오기 전에 윤 총장 스스로 물러나는 게 맞다"라고 직격했다.

우상호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윤 총장은 그동안 정권에 핍박받는 공직자 코스프레로 절차적 정당성을 앞세워 버텨왔겠지만 징계위의 결정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라며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남은 것은 자진 사퇴뿐이다"라고 압박했다.

직무 정지로 윤 총장은 앞으로 2개월 동안 직무 집행이 정지되고 보수도 받지 못한다. 내년 7월까지 임기인 윤 총장이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4개월여 남짓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징계안 재가가 윤 총장의 징계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이나 공정성이 충분히 보장됐다고 판단한 것이냐'라는 질문에 "그동안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누차례 강조를 해왔고, 그에 따라서 징계절차가 이뤄진 것이고 징계위의 의결 내용을 집행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여권은 윤 총장의 정직 기간 동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공수처 초대 처장 선출을 위한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가 오는 18일 5차 회의를 소집하고 후보자 의결 절차를 밟는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검찰개혁을 왜 해야 하는지 더욱 분명해졌다. 우리는 검찰개혁을 지속할 것"이라며 "공수처는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사상초유가 될 검찰총장의 소송제기, 이에 뒤따르는 치열한 법정공방과 검-언-야당의 집요한 반정부 정치투쟁이 예상된다"며 "이런 와중에 공수처가 발족하여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적었다.

야권에서는 '식물 총장'에 버금가는 중징계라는 혹평을 내놓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임면권자로서 윤 총장을 사전에 불러들여 내쫓으면 될 일을 굳이 복잡한 절차를 거치게 하는 대통령,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기현 의원은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알아서 적당히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를 막도록 해놓고 그 사이 공수처를 발족시키자마자 바로 다 권력형 비리 수사를 다 빼앗아가면 된다"며 "청와대가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정직 2개월이다. 사전에 정치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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