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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어떻게 권력 장악 했나?...스토리2편 옐친의 후계자 지명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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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어떻게 권력 장악 했나?...스토리2편 옐친의 후계자 지명 비화
  • 이현섭 기자
  • 승인 2019.12.23 0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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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 총리에게 대통령의 상징 '헌법'을 건네는 옐친 대통령/ 사진 = 크렘린 ]
[ 푸틴 총리에게 대통령의 상징 '헌법'을 건네는 옐친 대통령/ 사진 = 크렘린 ]

푸틴 대통령은 1999년 12월 31일 전임 옐친 대통령의 갑작스런 '하야' 선언으로 러시아 권력 서열 1위로 올라섰다. 소련 공산당 집권 70여년을 포함해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더라도 최고 권력자의 자진 사퇴 - 후계자의 권력 승계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최고권력자가 크렘린 권좌에서 내려오는 순간, 고통스런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흐루시초프 전 공산당 서기장의 실각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옐친 전 대통령(이하 옐친)은 스스로 크렘린을 떠나는 길을 택했다. 후계자로 푸틴 대통령(이하 푸틴)을 택했고, 오는 31일이면 그가 권력을 장악한 지 20년이 된다. 옐친은 뭘 믿고 푸틴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권좌에서 내려왔을까?

옐친 전 대통령의 사위 발렌틴 유마셰프 전 크렘린 행정실장(우리식으로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20년전 푸틴이 후계자로 발탁된 비화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옐친의 딸 타냐와 결혼한 유마셰프는 1997년 3월~98년 12월 크렘린 행정실장으로 근무했다. 대통령의 사위이면서 행정실장을 맡았으니, 그는 당시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최고실세였다.

유마셰프의 회고에 따르면 푸틴을 중앙 정치무대로 발탁한 사람은 아나톨리 추바이스 전부총리와 알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이었다. 크렘린 행정실에 근무하던 추바이스-쿠드린 '두 톱'이 행정부의 요직을 맡아 크렘린을 떠나면서 유마셰프가 크렘린 행정실장으로 부임했고, 푸틴은 당시 행정실에 근무하고 있었다. 추바이스-쿠드린이 푸틴 집권시절에 꾸준히 중용되는 걸 보면, 세 사람의 인연을 짐작 가능하다.

푸틴의 업무처리 능력에 반한 유마셰프는 그를 행정실 제1부실장으로 발탁했다. 유마셰프는 "푸틴과 몇달 같이 일을 하면서 그의 업무 능력을 확인했다"며 "사안을 분석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하는데 특히 뛰어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8년 푸틴은 옐친의 후계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옐친 대통령이 자신의 후계자를 찾기 시작한 것은 1998년 말 즈음. 러시아가 서방의 대외채무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한(8월) 직후였다. 옐친식 경제개혁이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옐친은 2000년 6월 차기 대선에서 공산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는 예브게니 프리마코프와 새 정당 오쩨체스트보 отечество(조국)를 결성한 유리 루즈코프(전 모스크바 시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젊은 후계자를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마셰프는 "옐친은 1991년 소련의 붕괴를 이끌었던 세대는 자신과 함께 떠나야 하고, 20년 정도 젊은 45~50세 세대가 나라를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며 "나라를 믿고 맡길 수 있으며 자신의 개혁을 계속 추진할 사람을 원했다"고 했다. 가능성이 있는 후보로 푸틴을 포함한 10여명이 추려졌다. 후보속에 (2015년 피살된) 보리스 넴초프 부총리, 세르게이 스테파신 내무부 장관(이후 넉달간 총리), 니콜라이 악세넨코 교통부 장관 등이 포함됐다.

유마셰프는 옐친이 '푸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최고의 후보"라며 "푸틴이 일하는 방식을 지켜보니, 앞으로 더 큰 일, 더 어려운 일을 할 준비가 된 친구"라고 대답했다. 그가 KGB 출신이라는 사실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KGB가 국가와 국민의 신뢰를 잃었을 때 푸틴은 KGB를 떠났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 유권자들은 대선에서 푸틴 후보에게서 '스스로 원하는 무언가'를 발견했고, 자유주의자들은 '옐친 사상의 후계자'로, 보수주의자들은 FSB 책임자의 이미지를 믿고 푸틴을 지지했다고 유마셰프는 밝혔다.

푸틴은 대통령이 된 뒤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후임자 이야기를 듣고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말로 고사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유마셰프는 "(후계자중 한명인) 세르게이 스테파신이 1999년 5월 총리로 발탁됐지만, 넉달만에 경질되고, 그 자리를 푸틴이 차지하면서 후계자 지위를 굳혔다"고 강조했다.

[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을 만난 옐친 대통령 / 사진 = 크렘린 ]
[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을 만난 옐친 대통령 / 사진 = 크렘린 ]

옐친 대통령도 푸틴을 총리로 발탁한 뒤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만나 '푸틴을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비밀해제된 미 외교문서에 따르면 옐친은 1999년 9월 미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만나 "차기 후보(후계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푸틴을 만났다”며 "그의 과거와 역량을 보고, '신뢰할 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 "푸틴은 철저함과 강인함, 사교성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파트너와 소통하는 능력도 탁월하다"며 "유권자들이 푸틴을 지지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옐친 대통령의 사퇴는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유마셰프는 "옐친이 1999년 12월 갑자기 푸틴과 알락산드르 볼로신 행정실장을 불러 12월 31일 사임하겠다고 통보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그는 '푸틴을 후계자로 지명하는 것은 '아들이 태어난 것과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다르다. 그는 "가족, 친구들과 어울려 12월 31일 대통령의 신년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하야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옐친 대통령은 당시 TV 연설을 통해 "나는 이제 떠난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며 “헌법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을 푸틴 총리에게 부여하는 법령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푸틴 총리는 그렇게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됐다.

옐친 하야 연설문 썼다는 유마셰프는 "쓰기 힘든 연설이었다. 역사에 기록될 것이 분명했다"며 "국민에게 전해야 하는 메시지가 중요했다. 그 유명한 '국민의 용서를 구한다'는 구절을 굳이 쓴 이유"라고 했다.

옐친은 대통령실에서 마지막 TV 연설을 녹화했다. 공식 사임 발표가 나오기 4시간 전이었다. 유마셰프는 "녹하 장면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일부 사람들은 울음을 터뜨렸다"고 말했다. 내용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녹화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방에서 못나가게 했다. 그리고 유마셰프는 녹화된 비디오를 들고 직접 방송국으로 향했다.

유마셰프는 옐친 대통령의 당시 결정에 대해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또 당국의 언론 통제와 대규모 가두 시위 빈발 등에 대해서는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무명의 푸틴이 총리, 대통령으로 오르는 과정에서 체첸전쟁이 큰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옐친 대통령은 1996년 군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체첸 전쟁은 끝냈다"며 "푸틴 역시, 러시아 사회가 체첸전쟁이 계속되는 걸 원치않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또 '2차 체첸전쟁의 계기가 된 모스크바 등지의 아파트 폭발사고는 FSB가 배후에 있었다'는 전 KGB요원이자 영국서 피살된 리트비옌코의 주장에 대해서는 "당국의 조사가 더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체첸전쟁은 당시 프리마코프(공산당)이나 루즈코프(조국당)에게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푸틴 대통령이 2024년 임기가 끝나면 물러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물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옐친 대통령처럼 임기가 끝나기 전에, 다음 세대를 책임질 후계자를 지명하고 물러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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