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국가들 관세 협상 박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 조치가 본격화됨에 따라 베트남을 포함한 아세안 국가들의 대미 수출에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베트남 정부 내부 평가에 따르면, 미국이 20%에서 40% 사이의 관세를 시행할 경우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최대 3분의 1까지 감소할 수 있으며, 수출 손실액은 최대 370억 달러(약 473억 싱가포르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총리 판 민 찐의 자문위원회에 제출된 문서에 따르면, 이번 관세는 전자 제품, 기계, 의류, 신발, 가구 등 베트남의 주력 수출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이 중에서도 전자 산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분석된다. 기술 분야에서만 약 150억 달러의 수출 감소가 예상되며, 이는 전자 공급망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수준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지난해 베트남의 대미 수출액은 약 1,200억 달러로 집계됐으며, 이 같은 수치는 베트남의 수출 경제에 있어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서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통해 중국의 '급격한 발전'을 억제하고, 미국의 글로벌 경제 지위를 재건하려 한다는 직설적인 표현도 포함되어 있어 주목된다.
실제로 트럼프는 올해 4월 베트남 제품에 대해 최대 46%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으나, 7월 7일에는 양국 간 초기 무역 합의를 통해 일반 상품에는 20%, 환적 상품에는 40%의 관세를 적용하기로 조정한 바 있다. 미국이 베트남으로 수출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관세 혜택이 유지되고 있다.
관세 압력 속에서 아세안 국가들도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필리핀은 이미 미국과 관세 협정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19%인 관세를 오는 8월 1일 이전까지 15%로 인하하기 위해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필리핀 주미 대사 로무얄데스는 "최저 관세율 15%를 기준으로 모든 품목에 대해 추가 인하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15% 이하로의 인하 가능성을 일축한 바 있다.
트럼프는 7월 22일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각각 관세 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으며, 이들 국가의 대미 수출품에 대한 관세는 최대 25%에서 15~19% 수준으로 낮아졌다. 필리핀은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일부 미국산 품목에 대해 무관세를 부여하고, 대두, 밀, 의약품 등 미국 제품의 수입을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쌀, 옥수수, 설탕, 생선, 돼지고기 등 민감 품목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입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미국과의 무역협정에서 디지털 무역 조항이 포함되며 새로운 논란을 낳고 있다. 협정 조건에는 인도네시아가 개인 데이터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 인도네시아 통신·디지털부 장관 메티야는 "데이터 이전은 안전한 거버넌스 체계 내에서만 이루어질 것이며, 섣불리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인도네시아의 허술한 데이터 보호 체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말레이시아 역시 미국과의 협상을 진행 중이다. 자프루 투자무역산업부 장관은 미국과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8월 1일 이전에 타결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최종 관세율은 공정한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며, 20%보다 낮은 수준이 진정한 목표"라고 밝혀 실질적인 추가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하지만, 그 여파는 아세안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각국은 자국 경제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잇따라 협상에 나서고 있다. 관세 갈등이 새로운 균형점으로 진입하면서, 아세안-미국 간 무역 관계는 중요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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