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전북 지자체장및 의원들의 투자유치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과 분발을 촉구합니다.

한 명의 지도자의 큰 역할이 그 도시의 운명이 달라진 사례가 있습니다.

삼성그룹의 고 이건희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의 고향이 우리고장  '전주 덕진'이라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필자는 지난 2월 삼성의 홍라희 여사에 대한 글을 올려드렸습니다. 

홍라희 여사는 전 삼성미술관 리움관장이자 이재용 삼성부회장의 어머니입니다. 

1945년 7월15일 전 중앙일보 홍진기회장의 장녀로 우리 고장 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홍진기회장은 전주지법 판사시절 홍라희를 전주에서 장녀로 낳았습니다. 어머니 김윤남여사는 독실한 원불교 신자입니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홍라희 이건희 부부는 원불교 뉴욕주 쎈터건립 을 위해 부지와 건축비등을 전액기부 하였고 원불교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홍진기 아버지가 전주에서 판사시절 딸을 낳자 전라도에서 딸을 얻은 기쁨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전라 '라'자에 기쁨 '희'자를 사용하여 이름을 '라희' 라 지었고 홍라희 여사의 본명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홍진기회장은 그후 법무부장관과 내무부장관까지 역임하였고 중앙일보 초대회장까지 지내셨습니다. 

홍라희여사의 고향이 전주임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의 전북투자는 지금까지 전무합니다. 

이는 삼성의 인색함을 탓하기전에 그동안 도내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은 홍라희여사의 고향에대한 사랑과 관심을 부각시켜 전주와의 인연을 십분활용 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아주 많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광주에는 삼성전자 제조공장이 자리잡고 있으나 삼성의 안방마님이 태어난 고향 전주에는 아무런 삼성과의 연관 제조시설이 없다는것은 그동안 도내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의 책임이 아주 크다할 것입니다. 

물론 홍라희여사는 태어나기만 전주에서 태어났지 아버지 홍진기회장의 전주에서의 판사 이직으로 전주와의 인연은 불과 수년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 대한 '향수'는 있는 법입니다. 

홍라희 여사의 태어난 고향 전주를 홍라희여사 뿐 아니라 이재용 부회장과도 연결시켜 조그마한 인연을 우리고장 전북에의 투자 유치도 한번쯤 생각해보고 연결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삼성은 전라도와의 인연을 익산의 원불교에게만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익산시 또한 이러한 원불교와의 인연을 연계로 삼성그룹의 제조공장을 유치하는데 총력적인 힘을 쏟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전주와 익산 두 지역은 삼성과의 좋은 인연을 연결시키지 못하였고 결국 방관하여 때를 놓치었습니다. 

그만큼 그 지역과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하고 표로 연결지으려는 노력은 있는데 홍라희여사의 태어난 고향 전주와의 인연을 우리는 무시하고 지냈던 것입니다. 

광주에 삼성전자를 유치한 박광태시장의 삼성전자 유치 일화는 아주 유명합니다. 

박광태시장은 2002년 광주시장에 처음  당선 되자말자 가장 먼저 찾아 간 곳이 이건희 회장이 근무하는 삼성그룹의 본사 사옥이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을 직접 찾아뵙고 광주에 기업을 유치하리라는 굳은 결심을 하고 찾아나선 것 입니다. 

하지만 삼성의 그룹총수를 만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학수 삼성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은 그때마다 "회장님을 뵐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박광태시장은 삼성그룹 근처에 아예 자그마한 호텔을 잡아놓고 아침 6시면 출근하여 늦은 시간까지 이건희회장을 뵐려고 하는 간절한마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렸던 것 입니다. 

그시각 광주시는 시의회 의원들과 공무원들이 난리났습니다. 

시장에 당선되었으면 시정을 돌보고 여기저기 보은 인사를 해야 할 것이지 광주를 떠나 서울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하는 성토의 장으로 변하였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고 7일째 되는 어느 날, 이학수 비서실장은 이건희회장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회장님! 광주의 박광태시장이 시장에 당선되자 말자 매일같이 우리 회사로 출근하여 회장님을 뵈려고 아침일찍부터 출근하여 하루종일 기다리기를 오늘로서 벌써 일주일째입니다".

"제가 회장님이 안계시니 다음에 연락드리겠다고 하여도 회장님 만나 뵙기전에는 광주로 절대 내려가지 않겠다 하는데 어떻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이건희회장에게 조심스레 말씀 드렸습니다. 

그때까지 이학수 비서실장은 박광태시장의 본사 출근을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를 안했던 것입니다. 

사실 아무리 시장이라고 하여도 우리나라 최고의 삼성그룹의 총수인 이건희회장을 만난다는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이학수 비서실장의 책임감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전국의 시장군수들이 해마다 예산때만되면 기획재정부 사무실을 드나들고 조금이라도 내 지역 예산을 반영하기 위해  인맥을 찿아 동분서주하지만 사실 기재부 국장이나 과장 한명 만나는것도 힘든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삼성그룹의 총수인 이건희회장을 만난다는것은 감히 꿈도 꾸지 못 할 일 입니다. 

그때 이건희 회장께서는 " 그럼 들어오라고 하세요"라고 하시는 것 이었습니다. 

이윽고 이학수 비서실장은 박광태시장을 회장실로 안내하며 절대 회장님께 부담드리는 말씀은 삼가 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회장실 문이 열리고 멀리 안쪽에 앉아있는 이건희 회장을 보는순간, 갑자기 큰 절을 하며 하는 말이 "회장님" 찾아뵙게되어 영광입니다. "제가 회장님을 뵈려고 광주 시장에 당선되자말자 바로 이곳 삼성그룹 사옥으로 매일 출근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뵙게되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며 마치 신하가 왕에게 아뢰 듯 무릎을 끓고 바닥에 머리를 엎드리며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그런 모습으로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건희 회장께서는 " 이리와 앉으세요" 라고 말하였지만 엎드린 박광태 시장은 더욱더 애절한 목소리로 "회장님 우리 광주가 텅 텅~비워 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광주를 살려주십시요! 한번만 우리 광주를 도와주십시요! 하며 애절한 목소리로 절규하며 이건희 회장께 말씀을 올렸습니다. 

이윽고 다시 이학수 비서실장의 부축으로 이건희 회장앞 쇼파에 앉게되었습니다. 

박광태시장은 안쪽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이건희회장께 다시한번 용안을 뵐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였습니다. 

결국 간절한 노력은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되었다.

성경 마태복음 7장7절에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 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형권 칼럼니스트 leehyung@nvp.co.kr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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