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회사로 스님이 출장을 왔다!

아, 살 좀 뺄걸” 무릎보다 종아리 살이 접혀서 더 아프다.

분명히 이 말을 작년 이맘때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고 몸무게도 늘고(?) 기억력은 줄어들었다. 제길. 20분째 무릎을 이리틀고 저리 틀어가며 어쩌하지 못하는 몸을 베베 꼬고  있다. 내 인내심이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아침에 부장님이 조용히 부르시더니 중요한 내부 행사가 있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졸졸졸 따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문을 여니, 비밀공간처럼 몰래 숨어있는 옥상같은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곳에 누군가 똑똑똑 노크를 하며 문을 열었다. 

검정색 노트북 가방이 불룩하다 못해 터질정도로 뭔가를 잔뜩 준비해 온 민머리 남자가 들어오는데 자세히 보니 갈색 적삼을 입은 스님이였다. 호기심에 부장님께 물어보니 오늘 고사를 지내기 위해서 특별히 모셔온 스님이란다. 한국의 스님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우리 회사는 매년 음력 7월 15일에 조상님에게 공양을 드리며 한해의 안녕과 번성을 기원한다. 요 며칠전 인스타그램에서도 종종 비슷한 영상이나 사진이 올라오는 걸 보니 비단 우리 회사만 하는 건 아닌 건 같았다.

요즘에 2,30 대들은 미신이라고 하며 하는지 안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내 주변은 자동차를 사면 막걸리를 바퀴에 부어가며 안전을 바라고, 월초와 보름에는 집 밖 모서리에 소주를 부어가며 가족들이 무탈하길 바라거나, 연구실의 친구들은 실험용 쥐들을 위한 위령제를 지내는 분들이 있다. 혹시나 예민하게 종교적인 문제를 걸고 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부분은 순전히 나와 내 지인들의 자라온 환경 중에 극히 단편적인 모습이니까.   

아무튼, 부지런한 직원들이 벌써 상을 한가득 차려 놓았다. 찬찬히 살펴보니 우리나라에서 고사를 지낼 때와 마찬가지로 제철 과일 몇가지와 노란 부리까지 온전히 있는 삶은 닭고기와 생선, 그리고 야채와 과자까지 골고루 상 위에 차려져 있고, 제사상 아래에 오른쪽에는 하얀죽과 찐 소라가 한솥, 미꾸라지가 파란 대야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고, 속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박스 안에서 뭔가가 끊임없이 부시럭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에 화려한 금박지를 휘두른 종이 말들이 관모와 신발, 접시에 온갖 것들을 함께 어지러울 정도로 잔뜩 늘어져 있었다. 

금색, 은색, 초록색, 빨간색 게다가 색깔별로 말과 날개 달린 신발과 꽃줄까지 달린 모자가 각각 세트였다. 놀라운 공양물이다.

간혹 길거리에서 아저씨들이 노란색 가짜돈은 태우는 건 월초와 중순에 종종 보던 풍경이라 이미 익숙해졌지만, 이렇게 제대로 진행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고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스님은 손바닥만한 목탁을 꺼내서 톡톡톡 두르리며 우렁자게 경을 읊었다. 

언어는 달랐지만 쉼표가 느껴질 수 없는 심오하고 긴 염불은 한국에서 보았던 그 느낌과 매우 비슷했다. 스님이 잠시 도구를 바꿀 때마다 나도 따라서 일어나 잠시 자세를 바꾸고 “빠이 빠이 누구누구“라고 할  때마다 사람들이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는 걸 보니,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면서 일이 잘되게 해달라고 비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분위기를 보며 나도  합장한 손을 흔들며 ‘뭔지는 모르겠지만 잘 되기를 비나이다’ 를 되뇌었다.  

스님은  노란색에  한자가 빽빽하게 적힌 기도문을 3장 정도씩  쉬지 않고 주욱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회사의 높은 분의 이름과 함께 타인꽁 (성공), 켐 띠엔(돈을 벌다), 안또안(안전)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들렸다. 나라가 달라도 성공과 안전, 부귀영화를 바라는 건 어디나 똑같은 것 같다. 제사방식도 그렇고 베트남은 생각보다 한국과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하노이(베트남)= 앨리스 리 기자 Alicelee@nvp.co.kr

필자 프로필
2020 - 2021하노이 교민 잡지 기자

2021-2022 코참 하노이 정책개발국 운영진

2022 하노이 한인회 행사분과 운영진

2018 –현재 Ascott Vietnam, 고객 관리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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