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당시에는 그야말로 쇼킹한 뉴스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은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필자는 백세건강 시대에 건강한 노후 생활을 영위하게끔 신물질을 개발해 인류가 식품과 의료에 활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능가하는 대 사건으로 후세의 역사가(歷史家)들은 기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무역가입니다.

당시 유럽은 금과 향신료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중국과 인도 등 동양의 특산물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콜럼버스는 마르코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을 여러차례 읽은 탓에 그 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대서양을 건너 해로(海路)를 통해 동방으로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항해를 위해 무려 8년 간이나 준비를 하였는데 스페인 여왕의 전폭적인 지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경쟁적으로 해양으로 진출하려고 했던 점도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얻게된 배경입니다.

당시에는 지구가 4각형으로 되어있다고 믿었던 시기였는데 바다를 항해해서 가다보면 어느 지점에서 폭포처럼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장기간 운항을 할 선원들을 구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실의 협조를 받아 감옥에 갇힌 중범죄자들을 항해가 끝난 후 사면하는 조건을 붙여 선원으로 특별채용하기도 했습니다.

오랜 기간 준비를 갖춘 콜럼버스는 1492년 8월 3일 3척의 범선으로 선단을 꾸려 그 중 산타마리아호에 승선하여 스페인의 Palos항을 야심차게 출항합니다.

장기간의 항해에서 피로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지친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그해 10월 12일 새벽에 드디어 바하마 군도의 과나아니(Guanahani) 섬에 상륙합니다.

콜럼버스와 일행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섬을 동인도라 생각했고 그 생각은 그들이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랜 항해 끝에 발견한 신대륙에는 기대했던 금과 향신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애꿎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상당수의 원주민들을 노예로 끌고가기에 이릅니다.

콜럼버스는 그 지역이 인도의 일부라고 생각했기에 그곳을 서인도 제도라 불렀고 그곳 주민들 역시 "인디언"이라고 부르게 되면서 지금까지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입니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곳이 오늘날의 미국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어쨌거나 콜럼버스의 목숨을 건 항해로 인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신대륙의 존재도 밝혀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두고 이런저런 뒷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가 이룬 사실(史實:역사에 실재했던 일)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의 모험심과 결단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이러한 도전적인 정신과 열정이 필요합니다.  

배대열 칼럼니스트
유튜브 "배대열의 세상만사" 대표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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