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대한민국의 의료인. 교육자. 가천대 길병원 살립자이자 가천 길 재단회장. 가천대학교 총장. 경인일보 회장을 맡고 계십니다. 

우리고장 옥구군 대야면 죽산리 출신의 자랑스러운 인물 이길여 여사는 올해 91세로 훌륭한 의료인입니다. 

대야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있고 뒤에는 야트막한 동산이 병풍처럼 쳐져있는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동네에서 전깃불이 들어오는 곳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방앗간 뿐이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책을 보았고 당시 6.25 전쟁 중에도 방공호에서 촛불을 켜놓고 공부하였습니다. 

이리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 후 1958년 인천에서 이길여 산부인과를 운영하다가 미국과 일본에서 인턴,레지던트 과정과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였습니다. 

이리여고시절 전교1등을 놓치지 않았고 서울대 의대에 당당히 합격하였습니다. 

정미소를 운영하던 아버지는 젊은 34세에 폐렴으로 돌아가시자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외딴 섬에 배를타고 왕진을 갔더니 한 젊은 여인이 아이를 낳다가 남편도 없이 저 세상으로 떠났는데 그때 배에서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평생 병원 한번 못 가보는 가난한 이들에게 "인술"을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합니다. 

1979년 전 재산을 출연해 종합병원인 인천 길병원을 개원하였습니다. 여자 의사로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의료법인을 설립하였으며 당시에는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환자가 없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새생명 찾아주기 운동본부"를 발족하여 지금까지 많은 봉사를 해 오셨습니다. 

1983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부부가 우리 한국을 방문한 후 미국으로 돌아가는 귀국길에 우리나라의 심장병 어린이 2명을 데리고 출국하는 방송 뉴스를 보고 마음이 짠하게 아프셨다합니다. 

그 이후 이길여여사는 동남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심장병어린이를 초청하여 무료로 치료해주며 그 마음의 빚을 갚고 있습니다. 

당신의 가운데 이름을 따 "길 종합병원"을 설립하였으며 호를 "가천"이라고 지었습니다. 

"가천"이라는 호는 "아름다움이 샘처럼 솟는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한국정신문화 연구원장을 지낸 류승국박사가 지은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길여 여사는 자신의 호를 딴 가천대학교. 가천대 길병원. 경인일보등을 재단법인으로 "박애" "사랑" "애국"을 설립 이념으로 삼아 의료.교육.언론등 다양한 방면에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1960~70년대에는 의료보험 제도가 없어 병원비 부담이 아주 컸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술이나 치료를 해주고 치료비를 내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수술전에 보증금을 미리 예치하는 제도가 종합 병원마다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길여 여사는 입원할 때나 수술할 때 받던 보증금 제도를 과감히 없애고 물질보다 사람의 생명이 더 고귀하고 소중하다는 의료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보증금을 받지 않는다는 소식에 환자들은 전국에서 몰려들었고 병원밖에 길게 줄을서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졌습니다. 

당연히 치료비가 없어 받지 못하는 비용이 상당했지만 이길여여사는 생명을 더 소중히 생각하였습니다. 

그후 1977년 시작된 의료보험이 사회에 정착되기까지 무 보증금제도는 계속되었습니다. 

이길여 여사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항상 청진기를 가슴에 품고 다녔습니다. 

차가운 금속체가 환자의 몸에 닿을 때 깜짝 놀라거나 움찔하는 환자들을 위해 청진기를 당신의 체온으로 덥혔던 것입니다. 

1970년대 초 우리나라에 "태아심박" 초음파기기 4대가 도입되었을 때 그중 한대가 길병원에 들여왔습니다. 

그 초음파기기로 아기의 심장뛰는 소리가 들리면 산모와 가족은 물론 기다리던 환자들 모두가 신기하여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습니다. 

당시 이길여 산부인과에는 인천 병원 가운데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는데 그 엘리베이터를 보기위하여 시민들이 몰려오기도 하였습니다. 

병원에는 당시의 산부인과 수술도구와 수술대 등 기념관 2층에는 산모의 감격에 찬 모습등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병원에서 끓여준 미역국이 맛있기로 소문이나 퇴원뒤에도 냄비를 들고 찾아오는 환자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길여 여사는 올해 91세로 독신입니다. 

처음부터 한번도 결혼을 하지않았고 슬하에 자녀들도 당연히 없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것은 "난 환자를 돌보고 섬기기 위하여 환자들과 결혼하였다 합니다" 

마치 테레사 수녀가 "허리를 굽혀 섬기는 자는 위를 보지 않는다며 자신의 몸을 가장 낮은데로 낮추어 인류애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 것" 처럼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이길여 여사는 한 평생을 바쳤습니다. 

제 2의 마더 테레사 수녀처럼 이 시대의 "살아있는 성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느 덧 이길여 여사는 올해나이 아흔 한 살의 나이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동안피부와 건강미는 가천대학교 신입생 환영사 식장에서 학생들은 놀라와 하고 있습니다. 

환영사는 또렷한 발성과 건강미 넘치는 외모와 그리고 감성이 넘치는 감동의 연설에 신입학생들은 두손을 모으며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왔습니다. 

90대의 나이가 아닌 60대 정도의 기력과 당당함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계단을 무리없이 오르내리고 굽있는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이사장의 건강한 모습에 놀란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젊은 학생들의 정기를 빨아먹어 젊어진다"는 우스갯 소리도 나온다 합니다. 

1989년 강원도 도계읍에서 인천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갑자기 양수가 터져 병원응급실에 실려온 강원도 도계읍에사는 4쌍둥이 산모는 70만분의 1확률로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산모가 수술비와 입원비를 마련하지 못한다는 딱한 소식을 듣고 병원비를 일절 받지않았습니다. 

이길여 이사장은 대학까지 모든 학비를 장학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였고 1주일 뒤 퇴원하는 산모에게 생활비까지 대주며 건강하게 잘 키울 수 있도록 부탁도 하였습니다. 

19년이 흐른 어느 날 이길여 이사장의 언론 인터뷰중 네 쌍둥이를 다시 기억 해 내면서 다시 인연이 시작되었고 4쌍둥이 자매에게 대학 장학금을 지급하였습니다. 

4쌍둥이는 "백의의 천사"라는 같은 꿈을 이루기 위해 간호학과에 진학하였고 간호사 국가고시에 모두 합격한 4자매는 이사장님의 배려로 길병원 간호사로 특별 채용되었습니다. 

22년전 자기들이 태어난 병원에서 간호사로 나란히 근무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25년전 한날 한시에 네 쌍둥이중 세명이 합동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길여 이사장과 4쌍둥이의 인연은 당시 많은 언론에 보도되었고 간호사로 근무하는 4쌍둥이는 부모님에 대한 효심도 남다르고 환자들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섬김이 극진하다고 합니다. 

이길여 이사장의 사랑과 헌신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필자는 지난 군산 호원대를 방문하기 위하여 대야를 거쳐 양옆으로 벚꽃이 만발한 도로를 지나가는 길 옆 표지판에 "이길여 길"이라는 교통 표지판을 보았습니다. 

아~ 이 동네가 그 훌륭한 이길여 여사의 고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길여 여사는 이곳 대야의 대야 초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대야초등학교 모교에 이길여 도서관을 지어주었고 실내체육관도 지어주고 모교 어린이들을 인천과 서울로 초청하여 꿈과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매년 꾸준히 성적 우수 장학금을 지급하고 후원금을 모교에 보내며 고향의 애틋한정과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대야 초등학교에는 이길여 여사의 흉상 제막식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눈 높이를 고려하여 가로 50cm 세로30cm 높이75cm의 아담한 크기로 제작된 흉상은 40대 이여사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이길여 여사는 "미래를 바라보고 푸른 꿈을 키워 가라"는 의미와 대한민국의 인재를 키우는 동량으로 자랄 수 있도록 꾸준한 후원을 약속하였습니다. 

모교인 이리여고에 기숙사와 강당도 지원하고 기숙사와 강당에 호를 따서 "가천학사" "가천관"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전북 애향대상과 자랑스런 전북인 대상을 수상하셨고 고향분들이 주시는 소중한 상을 감사하게 느끼고 있다고 소감을 말씀 하셨습니다. 

가천대 길종합 병원은 올해 65년의 역사를 맞이하였습니다. 

어느 덧 아흔 한살을 맞이하신 이길여 이사장의 고향사랑과 헌신 그리고 따뜻한 인술은 이 사회에 많은 의료인들에게 귀감이되는 진정한 살아있는 성자임이 틀림없는 듯합니다. 

이형권 칼럼니스트 leehyung@nvp.co.kr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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