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태수 회장의 생전 모습 / 사진 = SNS ]
[ 정태수 회장의 생전 모습 / 사진 = SNS ]

국외 도피 21년 만에 붙잡혀 국내로 송환된 정한근(54)씨. IMF 사태를 촉발시킨 주범(?)으로 호되게 비판을 받은 한보그룹의 고 정태수 회장의 넷째 아들이다. 해외로 도피하는 바람에 지난 2008년 궐석 기소됐으나, 남미 우루과이에서 우연히 붙잡힐 때까지 그는 잊혀진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이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옛날 기억이 새롭게 되살아난다.

정태수란 인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사업의 앞날을 내다보는 눈은 탁월하다. 서울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건설이 그렇고, 러시아 시베리아 가스전 지분 매입이 또 그렇다. 한국과 러시아적인 상황에서 권력과 유착될 수밖에 없는 기업 운영방식은 예외로 치자. 남들보다 한발 먼저 '돈맥'을 꿰뚫어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대박을 터뜨렸다.

정태수 회장을 만난 것은 1996년 모스크바 특파원 시절이다. 그는 당시 '민영화'라는 이름 아래 국가 자산을 거저 손에 넣은 '올리가르히'와 다르지 않는 비즈니스 마인드로 시베리아 가스전 지분을 확보했다. 기업인으로서, 향후 먹고 살거리를 찾아나선 안목으로 보면 탁월한 선택이었다. 러시아 자원 투자는 사실상 처음이었다. 정 회장은 모스크바에서 특파원들과 조찬을 함께 하면서 투자의 당위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동석한 한근씨는 그때 갓 30대였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 '자원 투자'에 나선 공기업들이 '쪽박'을 차는 걸 보면서 한보그룹이, 정태수라는 인물이 계속 러시아 사업을 하고 있었다면, 러시아 석유 가스분야 투자에 관한 한 서방의 '메이저'에게 밀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정 회장은 러시아 올리가르히 못지 않게 '큰 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모스크바 특파원들이 어려운 생활 여건속에서 고생한다며 '촌지'로 보기 힘든 큰 돈을 내놓았다. 당연히 돌려줬지만, 정 회장은 '돈을 쓰는 데 아깝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보가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EAGC)를 통해 러시아 코빅틴스크 가스전에 투자한 금액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 수백만 달러로 기억된다. 대박을 터뜨린 건 분명하다. 정 씨 부자는 한보그룹이 부도난 뒤, 이 가스전 지분(회사 주식)을 팔아 그 일부를 빼돌렸다고 한다.

검찰발 보도에 따르면, 정씨 부자는 동아시아가스㈜를 통해 투자한 러시아의 ㈜루시아페트룰리엄(석유) 주식 27.5% 중 20%(900만주)를 러시아의 '시단코'측에 5,790만 달러에 넘긴 뒤, 2,520만 달러에 매각한 것처럼 허위 계약서를 작성, 3,270만 달러(당시 환율기준 약 323억원)를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 부자는 당시 허위 계약서로 국내에 신고한 뒤, 판매 대금 2,520만 달러만 국내로 들여오고 나머지 차액(3,270만 달러)을 스위스 은행 등으로 빼돌린 것이다.

검찰은 정씨 부자가 한보그룹의 부도로, 동아시아가스㈜의 러시아 투자 지분이 채무 변제 명목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겨질 것을 우려해 1997년 11월 직접 투자 1년 만에 팔아치운 것으로 보고 있다.

20년만에 붙잡혀 온 정한근씨를 조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김도형)는 나머지 7.5%의 행방을 추궁한 결과, 이 지분 역시 팔아 빼돌렸다는 진술을 최근 받아냈다고 한다. 정씨 부자가 나머지 지분도 넘기면서 큰 돈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올리가르히' 역사로 보면, 당시 러시아 석유 가스전 지분은 '돈방석'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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