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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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나코, 스위스, 두바이 등 조세 부담이 낮은 국가들로 이주하는 영국 부호들의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유럽 대륙 내 다른 국가들의 부자들은 비슷한 행보를 따라가기 쉽지 않다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벨기에 등 고세율 국가들이 자국 부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출국세(exit tax)’ 또는 ‘기적세’로 불리는 과세 제도를 적극 도입하거나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국세는 개인이 국적 또는 세무상 거주자 지위를 포기하고 다른 나라로 이주할 때, 해당 국가에서 쌓은 미실현 자본이익에 대해 과세하는 방식이다. 이는 국가 자원을 이용해 축적한 자산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논리로 정당화되지만, 실제로는 자산을 매각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수백만에서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크다.

국제 세무 및 이민 전문 회사 레스페란스앤어소시에이츠(Lesperance & Associates)의 창립자인 데이비드 레스페란스는 “비유동성 자산을 가진 고객들이 담보 대출에 얽매여 있어 세금을 낼 능력이 부족하다”며 많은 자산가들이 출국 자체를 꺼린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유럽 각국은 최근 경기 침체와 재정 적자 압박 속에서 출국세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독일, 노르웨이, 벨기에는 관련 법을 확대하거나 검토 중이며, 네덜란드 의회도 정부에 해당 세금의 실효성을 연구하라는 요청을 공식화했다. 영국 역시 노동당 내부에서 유사한 제도 도입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프랑스는 이미 상속세와 고율의 소득세를 통해 부유층을 겨냥한 세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80만 유로 이상 주식을 보유한 이탈자에게 30%의 세금을 부과하는 출국세를 시행 중이다. 이 같은 정책 기조는 많은 자산가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안기고 있으며, 일부는 이주를 포기하거나 이미 이주한 경우에도 본국으로 복귀하고 있다.

독일 로펌 로즈앤파트너(Rose & Partner)의 토비아스 스톨 변호사는 “고객들은 지역 세무 거주자 신분을 유지한 채 조세를 피하려고 한다”며,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 기업인이 결국 독일로 되돌아오고 딸만 미국에 남긴 사례를 언급했다.

이와 같은 규제가 강화되자 스위스, 이탈리아, 모나코, 아랍에미리트 등 세금 혜택을 제공하는 국가들은 자산가들의 새로운 안식처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조차도 최근 들어 초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세율 인상을 검토 중이어서, 자산가들의 행선지는 더욱 신중해지고 있다. 레스페란스는 “고객들은 이제 단순한 절세를 넘어서 가족 전체의 삶의 질과 제도적 안정성을 모두 고려한 이주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 컨설팅 회사 KPMG의 필립 귄드 세무 고문은 “노르웨이 부호들이 스위스로의 이주를 늘리는 반면, 스페인 부자들은 스위스의 임시 재산세에 반발해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며, 국가 간 과세 환경 변화가 자산가들의 움직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영국의 유산세 인상으로 인해 스위스로 향하는 영국인의 수 역시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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