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부유층 사이에서 자산을 해외로 이전하는 움직임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는 프라보워 대통령 취임 이후 강화된 국가 지출, 국유기업 통제, 그리고 불확실한 재정 전망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촉발된 현상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자산 관리자, 프라이빗 뱅커, 고액 자산가 등 10여 명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흐름이 실체를 드러냈다.
특히 금과 부동산은 전통적인 자산 도피처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최근에는 암호화폐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 중에서도 ‘타이다코인’은 인도네시아 부호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검열을 피해 대규모 자금을 자유롭게 이전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부 고액 자산가들은 전체 자산의 최대 10%를 암호화폐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자금 유출은 인도네시아 루피아의 급격한 평가절하와도 맞물려 있다. 4월 9일 기준 인도네시아 루피아는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자산 해외 유출이 환율 하락을 가속화시킨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다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시장의 적응으로 루피아는 다음 날 소폭 반등했다.
자산 해외 이전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 컨설팅 회사는 올해 2월 이후 단 한 달 만에 고객 자산 약 5천만 달러가 두바이와 아부다비로 이전됐다고 밝혔으며, 이는 작년 4분기의 1천만 달러보다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일부 자산은 가족과 지인의 명의를 통해 해외 부동산 구입에 사용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최대의 비국영 금 소매업체인 Hartadinata Abadi는 올해 1분기 금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약 30%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7년 상장 이후 가장 큰 폭의 분기 증가율로, 금에 대한 수요가 안전자산 선호의 흐름 속에서 크게 확대된 것을 보여준다.
한편, 글로벌 컨설팅 그룹의 인도네시아 담당 수석 분석가 데디는 “프라보워 정부가 재정 규율을 강화하고 인프라 등 실질 성장 동력에 집중할 경우 자금 유출 흐름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자산가들의 불안 심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향후 동향이 인도네시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