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투자 증가에도 노동효율 정체
일본의 IT 투자, 기존 시스템 유지에 집중
노동 생산성 저조, 글로벌 경쟁력 약화 우려

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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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정보기술(IT) 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생산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있지만, 기존 업무 방식이 크게 변화하지 않으면서 IT 자산이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IT 투자의 상당 부분이 기존 시스템의 유지 및 복구에 집중되면서 경영 혁신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월 1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일본은행(중앙은행)이 발표한 전국 기업 단기 경제 관측 조사 결과, 2023 회계연도의 일본 내 소프트웨어 투자는 약 7조 4천억 엔(약 50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2018년 대비 39% 증가한 수치로, 주로 인력 부족 문제와 디지털 전환 대응을 위한 투자 증가가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투자 확대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들의 노동 효율성은 개선되지 않았다. IT 투자가 업무 방식 개선과 연계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더라도 기존의 작업 방식을 고수하면서 업무 효율성이 크게 향상되지 못하는 것이다.

일부 기업들은 IT 시스템을 도입한 후에도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해 대형 공급업체의 시스템으로 다시 전환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새로운 시스템에 맞춰 업무 방식을 변화시키기보다는, 기존 업무 환경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이 제한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IT 시스템을 개발한 엔지니어가 퇴사하면서 기존 시스템이 블랙박스로 남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한 대형 IT 공급업체 임원은 "일부 시스템은 초기에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업그레이드가 어려워지고 결국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IT 투자 패턴을 보면, 새로운 혁신보다는 기존 시스템의 유지 및 보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본 정보시스템 고객 협회가 2023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IT 예산 중 75%가 기존 사업 유지 및 운영에 배정되었으며, 신규 사업 확장에 사용된 비율은 24.5%에 불과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수치다. 기업들은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면서 새로운 조치를 위한 투자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유럽과 미국 기업들은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을 적극 도입해 기업 전체의 업무 방식을 변화시키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여전히 부서별로 개별적인 개혁을 진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 IT 투자의 효과를 충분히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IT 투자 규모에서도 일본은 선진국들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 2023년 기준, 미국과 영국의 기업 1인당 소프트웨어 자산은 4달러를 초과하며 일본의 두 배 이상이다. 또한, 최근 5년간 IT 투자 증가율을 비교해 보면, 일본은 6% 증가한 데 그친 반면, 미국과 영국은 20~50%에 달하는 성장을 기록했다.

IT 투자의 한계는 일본의 노동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 노동효율본부에 따르면, 2023년 일본의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56.8달러로, 미국과 영국(80~90달러)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도 일본은 29위에 불과해 선진국 중에서도 생산성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로 평가된다.

다이와종연의 이시카와 기요카 연구원은 "일본 기업들이 IT 투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혁신적인 제품 및 서비스 개발을 늦추고, 결국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IT 투자의 방향성을 전환해야 한다. 단순히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업무 방식도 변화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시스템 통합 서비스 기업 OBIC는 재택근무 증가에 맞춰 내부 시스템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전환하고, 고객에게도 클라우드 서비스 도입을 권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방문 없이도 기술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으며, 그 결과 10년 전과 비교해 경영 이익이 3배 이상 증가했다.

귤승일 OBIC 사장은 "아무리 뛰어난 IT 인프라가 구축되더라도 업무 프로세스를 개혁하지 않으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 기업들은 향후 IT 투자 전략을 단순한 유지·보수가 아닌 혁신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 기존 업무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동시에, 신규 IT 시스템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직 개편과 인력 재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IT 투자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금 투입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IT 시스템과 기업 운영 방식 간의 유기적인 연결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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