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금주 일요일(6.25)은 한국전쟁 발발 73주년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동족상잔의 만행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날이다.  

특히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낯선 나라에서 파병되어 조건없이 자신을 희생한 용사들 덕분이었다.

이와 관련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캐나다 현대자동차 신상묵 딜러와 참전용사 친동생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감동스토리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6.25 참전용사 캐나다 'Roy Duglas Elliott'에 대한 감동스토리가 최근 호국보훈의 달과 6.25전쟁 발발의  날을 맞아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거주 도널드 엘리엇씨는 Toronto에 있는 현대차 "미시소거(Mississauga)' 점을 방문해서 한국인 딜러 신상묵씨와 구매 상담을 했다. 

그는 자신을 맞아준 딜러가 한국인줄 알고 자신의 형이 한국전쟁 참전 중 전사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이제는 형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고 나이도 들고 해서 본인도 가 볼수도 없다"고 푸념섞인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60년 전 머나먼 낯선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떠난 형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어려운 형편에 형의 묘지조차 찾지 못한 채, 이렇게나 세월이 흘러 버렸지만 그는 한국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은 자기 형이 피를 흘리며 자유를 지켜준 나라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이러한 애절한 스토리에 감동한 신상묵 딜러는 전사자 명단과 묘비 소재를 찾는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끈질긴 수소문 끝에 부산 유엔 기념공원 사이트 검색을 통해고객의 형 유골 소재를 찾게 되었다.

그곳에는 유엔군 전몰 용사 리스트가 있었고, 마침내 그토록 찾던 이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Roy Duglas Elliott" 사이트에는 묘비 사진까지 올라와 있었다. 

곧바로 사진을 현상해서 액자에 넣었다. 차를 찾으려고 온 엘리엇씨에게 딜러는 액자를 선물하며, 형의 묘지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었다. 

60년 만의 큰형님 소식을 전달 받은 그 자리에서 엘리엇씨는 액자를 꼭 껴안더니 슬픔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노신사가 차를 찾기로 한 날 현대차 딜러가 준비한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노신사는 그 자리에서 아이처럼 펑펑 울고 말았다. 

이 사연이 신상묵 딜러의 페이스북에 올라오며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우리 정부에서도 그의 애절한 사연을 알게 되었다. 

곧 엘리엇씨에게 또 다른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국가 보훈처에서 엘리엇씨를 한국으로 초청하겠다는 감사함을 전달한 것이다. 

캐나다는 6·25 때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2만7천여 명을 파병, 516명이 전사를 했고, 30여 명이 실종, 1200여 명이 부상당했다. 

R.D.엘리엇 상병이 속했던 캐나다 제2보병 대대는 1951년 4월 가평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공을 세운용맹스런 부대였다.  

중공군이 캐나다군이 위치한 곳을 주요 공세 목표로 지정하면서 캐나다군이 큰 피해를 볼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캐나다군은 절대 그곳을 뚫려 선 안된다며 끝까지 사수하는 데 성공하였다. 

캐나다군이 한국에서 수행한 작전 중 가장 위대한 전투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국만리 낯선 나라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달려와 준 16개국 유엔참전 용사 당신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한국은 전쟁의 아픔을 딛고 세계10대 강국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보훈부 승격과 함께 다시 한번 초심불망(初心不忘)의 자세로"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번영을 위해 헌신하신 외국 참전 영웅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는 사실을 73주년을 맞는 기념일에  우리는다시 되새겨야한다.

태어나는 곳은 본인이 선택하지 못하지만 본인이 본인의 가치를 위해 죽음의 장소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거룩한 교훈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셨다.

해외 참전용사 영혼들이 영원히 평안하게 영면하시기를 오천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기원한다!

이상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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