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한국을 지킬 '최종병기 활'

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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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반도체 기술 봉쇄에 중국은 반도체를 인체의 '심장'으로 정의했다. 심장이 멎으면 사람이 죽듯이 반도체는 생명이라고 중국은 정의하고 국산화에 돌입했다. 미국은 반도체를 '국가안보'라고 정의하고 안보에 저해되는 모든 요소는 제거하고 있다. 지금 반도체는 국가의 명운이 걸린 국가대항전이다 그럼 한국에 있어서 반도체는 무엇일까?

한국 반도체 기업은 세계 1위와 3위를 한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서로 모셔가려는 상황이다. 반도체는 생산량이 두 배가 되면 원가가 33% 떨어지는 '학습곡선 효과'가 적나라하게 적용되는 산업이다. 그래서 1등의 '선발자 이익'이 경쟁의 핵심이고 고수익의 원천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이 '선발자 이익'이 적용되는 산업에 미국과 중국은 국가가 개입했다는 점이다. 반도체 기술과 생산에 있어 돈으로 꾀고, 장비로 위협하고, 정치와 외교로 압박하는 전방위의 “닥치고 1등”의 막가파 전략이 등장한 것이다.

그간 재벌기업의 잘못된 행태와 도덕적 문제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잘못된 점에 있어서는 기업의 절절한 반성과 수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반도체가 국가대항전이 되어 버린 마당에서 세계 1등, 3등 하는 기업에 정부가 지원하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이젠 한국 국내 문제가 아닌 미국, 중국과 경쟁하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반도체 황금알을 낳는 닭을 버리는 것은 쉽지만 다시 만들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황금알은 2등으로 추락하는 순간 싸구려 새알로 전락한다. 지금 반도체는 미·중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낀 한국을 당당하게 하고, 한국을 살릴 '최종병기 활'이다. '중국의 심장+미국의 안보' 두 개를 모두 합한 것이 한국의 반도체다. 한국은 지금 무역적자에 비명이지만 그 원인도 반도체에 있다.

일본은 한때 잘나갈 때 '신의 나라'라고 거들먹거리다 망했지만 한국은 지금 누가 뭐래도 '반도체의 나라'다. 1980~1990년대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반도체를 석권했을 때 NEC, 도시바, 히타치를 한국의 삼성이 추월한다는 것은 한여름 밤의 꿈 같은 것이었지만 지금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기술은 보조금으로 동맹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의 역사책으로 불리는 인텔은 1968년 7월 18일 화학자 고든 무어와 물리학자이자 집적회로의 공동 발명가인 로버트 노이스가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뷰에 설립한 회사다. 살아 있는 반도체의 역사, 미국의 인텔은 지금 아시아의 후발국 대만과 한국이 3㎚ 공정으로 들어가고 있지만 7㎚ 공정에서 헤매는 이류가 되었다.

기술 혁신의 아이콘 인텔이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파운드리 공장을 재건하는 프로젝트에 쫓아 들어가고 있다. '무어의 법칙'으로 영원한 세계 1위일 것 같았던 미국의 인텔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실리콘 기판 위에서 1등의 선발자 이익을 누렸던 인텔은 스마일 커브(Smile Curve)에, 월가가 원하는 ROE(자기자본이익률) 경영에 너무 깊이 빠져들었다. 기술의 극대화를 통한 수익 창출이 아닌 ROE 극대화를 통한 시가총액 창출에 목숨 건 결과다. 고정비가 많이 들어가는 생산은 아시아로 넘기고 R&D와 유통에서 돈 버는 비즈 모델에 취해 후발자에 기술을 추격당했다. 배부른 돼지는 굶주린 늑대를 이기지 못했다.

40년 전 집을 나가 종착역에 도착한 반도체 기차를 바이든 미국 정부는 보조금으로 외교적인 힘으로 시발역으로 되돌리려 하지만 서방 민주주의 정치의 기억력은 4년마다 오락가락한다. 정권이 바뀌면 전임 정권의 정책은 홀랑 뒤집힌다. 정치 논리는 4년이지만 자본주의 경제 논리는 250년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데 세상에서 가장 뿌리 깊은 나무는 돈이다. 돈에는 피가 흐르지 않는다. 돈 되면 적과 손잡고 돈 안 되면 동맹도 쉽게 버린다.

기술은 혁신으로 사는 것이지 보조금으로, 동맹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등까지는 베껴서 따라갈 수는 있지만 빌린 기술로 1등 하기는 어렵다. 운 좋게 1등 한다 해도 수성이 어렵다.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것이 1등의 길이다. 미국의 보조금, 중국의 보조금은 2등까지는 가능하지만 창조적 파괴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1등의 길에는 결국 마약일 뿐이다. 약 기운 떨어지면 금단현상으로 더 괴로워질 뿐이다.

반도체산업에 영원한 1등은 없다.

하늘의 제왕 솔개는 수명이 30년 되면 부리와 발톱이 노화되어 먹이를 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솔개는 고통스러운 몸 만들기를 통해 수명을 연장한다는 우화가 있다. 돌에 부리를 쪼아 새 부리가 나게 하고, 그 부리로 발톱과 깃털을 뽑아내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뒤 창공을 차고 올라가 30년을 더 산다.

반도체에서도 산업주기 30년을 얘기한다. 천하장사도 산업의 강산이 두 번 변할 때까지 60년이면 기력이 쇠한다. 1968년에 설립된 반도체의 원조 인텔의 역사는 이미 강산이 두 번 변했다. 미국의 인텔도 기력이 쇠했다. 돌에 부리를 쪼아 새 부리가 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준 돈으로 임플란트를 하면 오래 못 간다.

이제 미·중 반도체 전쟁으로 반도체의 세계화는 죽었고 각자도생이다. 반도체 비즈니스 세계에는 영원한 인텔은 없었다. 나침반과 화약 등 4대 발명품의 나라 중국이 무섭게 쫓아오고 있다. 세계 1위인 삼성에 이젠 미국뿐만이 아니라 중국이 새로운 경쟁자다.

​맨땅에 헤딩해서 원자폭탄을 만든 경험으로 반도체에 덤벼드는 중국이다. 전쟁하듯이 국가가 나서서 반도체산업을 만든다. 자본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다. 중국은 수익성·생산성이 아니라 기술만 확보된다면, 제품만 나온다면 무한대의 자금과 인력, 조세 지원을 한다. ROE 따져서, 주가 영향을 따져서 투자하고 개발하지 않는다. 

세계 1위 반도체 회사로 등극한 삼성전자도 영원한 1등은 없다. 인텔과 일본 반도체 기업이 반면교사의 교과서다. 3차 산업혁명의 중심에서 떼돈 번 인텔, 4차 산업혁명 문턱에서 안주하다 후발 기업에 추월을 당했다.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다르다. 노트북과 휴대폰이 만든 IoT가 아닌 자율주행차, 날아다니는 택시가 만드는 V2X 시대이고, 그간 세상을 변화시켰던 실리콘 반도체의 판을 엎는 새로운 기판의 반도체 기술 시대가 도래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도 1등에 안주하면 인텔처럼 당한다. 바닥부터 새로운 창조를 해야 살아남고 한국을 당당하게 만든다. 1~2㎚ 이하 공정에서 실리콘의 물리적 한계가 온다. 그러면 정말 판을 엎는 발상의 전환과 기술의 전환이 새로운 30년의 역사를 쓰게 된다. 3세대, 4세대 반도체에서 기선 제압할 초격차가 없으면 삼성전자도 인텔의 길로 가게 될지 모른다.

삼성이 경쟁력을 잃는 순간 한국 반도체도 같이 사라진다. 지금 미·중 반도체 국가대항전에서 미운 재벌기업에 떡 하나 더 주면 안 된다는 방식으로 반도체를 접근해서는 답이 없다. 한국은 반도체산업에서 있는 경쟁력을 더 강하게 만들어 미·중의 공격을 막아낼 방패로 반도체 기업을 써야 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푸단대 박사/칭화대 석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Analyst 17년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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