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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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여성 창업자들이 자금 조달 과정에서 심각한 성희롱과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일본방송협회(NHK)가 실시한 스타트업 온라인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여성 창업가 153명 중 52.4%가 투자자나 사업 파트너로부터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이 중 30%는 자금 유치를 조건으로 강제적인 성관계를 요구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에 따르면, 성희롱 가해자의 47.7%는 영향력 있는 투자자나 주요 사업 파트너로, 이들의 권력적 위치가 피해자들의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자금 유치가 절실한 상황에서 여성 창업자들은 부당한 계약 조건이나 성적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으며, 그 결과 일부는 창업을 포기하거나 심각한 심리적 충격을 입었다.

이러한 문제를 세상에 알린 대표적인 사례는 2019년 창업한 마쓰자카 미호의 경험이다. 그녀는 투자자에게 사업계획서를 설명하던 중 식사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상대방은 "정부가 되어주면 매달 100만 엔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하며 그녀에게 키스를 강요했다. 마쓰자카는 이후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몇 년 간 은퇴 상태로 지냈다.

하지만 지난해 그녀는 다시 활동을 시작하며, 성희롱 피해 여성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수많은 피해 사례가 접수되었으며, 이 중에는 한 20세 여대생 창업자가 회의 중 벤처회사 관계자에게 어깨를 마사지하겠다며 뒤에서 가슴을 만졌다는 신고도 포함돼 있다.

또 다른 여대생 창업자는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구상하던 중 투자자로부터 "그 얼굴이면 뷰티 회사를 해야지 왜 IT를 하냐", "여자라 창업은 어렵다, 결혼이나 해라"는 식의 경멸적인 말을 들었다고 호소했다. 이러한 언행은 여성 창업자들의 능력을 무시하고 성별을 근거로 한 차별을 고착화하는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마쓰자카 미호를 포함한 여성 창업자들은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에 공식 보고서를 제출하고, 벤처 투자자들의 성희롱 행위가 불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관련 법률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창업 여성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여성 창업자들이 겪는 불이익은 성희롱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 금융청의 자료에 따르면, 스타트업 50곳에 투자한 벤처 자본 가운데 여성 CEO가 이끄는 회사는 단 2%에 불과했다. 이는 여성 창업자들이 단순히 성차별적 문화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자금 조달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일본 내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점차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업이라는 영역에서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과 차별이 존재한다. 이번 조사와 고발은 단지 일부 사례에 그치지 않으며, 여성 창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근본적 변화와 제도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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