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산 시계 브랜드 ‘로만손’의 창립자이자 현 중소기업중앙회장인 김기문 회장이 지난 4월 30일‘원산지 세탁’ 혐의로 약식 기소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젔다.
6월 13일 중소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제이에스티나 대표 당시 중국산 시계를 국내산으로 둔갑해 판매한 혐의로 약식기소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에 대해 5천만 원의 벌금형이 확정되었다는 것.
이후 김 회장의 이의제기가 없어 지난 5월 22일 5천만 원의 벌금형이 확정됐다.
제이에스티나는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1988년 설립한 ‘로만손’이 전신으로, 손목시계와 핸드백 등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김 회장은 2020년까지 제이에스티나 대표를 맡았다.
김기문 회장에 대해 이례적으로 많은 금액의 벌금형 처분이 확정됐지만, 중기중앙회 회장직 수행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정경제의 최전선에서 중소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인물이, 아세톤으로 ‘Made in China’를 지우고 국산으로 둔갑시킨 시계를 팔았다는 사실은 단순한 법 위반을 넘어 공공신뢰의 명백한 배신이라는게 재계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분명 그의 손목 위에 채워졌던 것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도덕의 퇴행이었다.
김 회장은 오랜 기간 중소기업계를 대표해왔다. 국회와 정부, 대기업에 중소기업의 권익을 외쳐온 그의 언행은 매체와 정부 정책에 큰 영향을 주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
하지만 그가 실상 어떤 방식으로 ‘중소기업’을 이해했는지는 이번 사건이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작은 기업의 생존권’을 외치며, 정작 자신의 기업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택했다.
아세톤을 들고 시계의 뒷면을 지우는 행위는, 곧 제도적 신뢰를 지우는 것과 같다.
이것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수년간 조직적으로 반복된 의도적 시장 왜곡이다.
이는 한때 한국 제조업 자존심으로 불리던 시계 산업이, 스스로 중국 OEM 생산물에 마크만 바꿔 붙이며 생명 연장의 꿈을 꾼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설계하고 승인한 사람이 중소기업 정책과 윤리를 논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큰 모순이다.
이 사건의 결과는 단순한 ‘벌금형’으로 귀결됐다. 약식기소, 벌금 5천만 원.법적으로는 큰 처벌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중대한 판례를 남겼다.
“한국에서 브랜드 이미지만 잘 세탁하면, 중국산도 국산보다 더 비싸게 팔 수 있다.”
“적발돼도 회장직은 유지 가능하고, 손해보다 이득이 크다.”
이는 중소기업이 아니라 중소상술이 성행할 수 있는 신호탄이며, 이윤 앞에서 윤리는 선택사항일 뿐이라는 잘못된 학습효과를 남기기도 했다.
그가 차고 다닌 시계는 시간을 속이지 않았지만, 소비자를 속였다.
문제는 그 시계가 이제 중소기업계를 대표하는 얼굴의 상징물이 됐다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정치보다 더 정치적인 문제다.
김기문 회장은 여전히 중기중앙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버티는 게 능력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국 한 사람의 법적 문제를 넘어,중소기업을 진정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분명한 것은 그 시계가 가리키는 방향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엔 도덕의 나침반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중소기업이라는 간판도, 회장이라는 호칭도,모두 붙이기 나름인 라벨에 불과할 뿐이다.
때마침 13일 오전 10시 이재명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경제6단체장과 5대그룹 회장이 참석하는 경제인 간담회를 개최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참석여부를 떠나 김기문 회장의 도덕성과 뻔뻔한 민낯이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자못 웃프기만 하다.
김창권 대기자 ckckck1225@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