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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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4일 49.4%의 지지율로 제 21대 대통령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탄식했고, 일부는 축배를 들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리고 필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이 완벽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는 걸. 특히 이재명대통령에게 걸린 수많은 혐의, 끝나지 않는 의혹, 진영 논리에 갇힌 리더십. 누가 그를 이상화했는가 되묻고 싶다? 그를 찍은 유권자들조차 대체로 말한다. “딱히 좋아서 찍은 건 절대 아니야.”

우리는 이재명 대통령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하지만,당신들—국민의힘은 훨씬 더 싫었다.

정치는 좋아서가 아니라, 덜 싫어서 선택된다.

국민의 힘은 지난 몇 년 동안 하나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왜 당신들이 다시 집권해야 하죠?”

그들의 대답은 항상 핑계를 대고 부실했다.
“문재인이 싫어서.”
“이재명이 위험해서.”
“우리가 아니면 나라가 망해서.”

하지만 정치는 공포 마케팅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정권교체를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어떤 미래를 만들겠다는 구체적 비전 없이, 오직 ‘저 사람은 절대 안된다’는 부정의 언어만 반복했다. 결국 그 부정의 화살은 자신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국민의 힘은 입으로는 ‘혁신’을 외치고, 손으로는 ‘기득권’을 움켜쥐었다. 윤석열 정부 내내 보여준 일방통행, 불통, 그리고 엘리트 중심의 폐쇄적 인사 시스템은 보수정당이 왜 유권자의 신뢰를 잃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무능한 오만이 치명적이었다. 정치가 ‘싸움’으로 비춰질 때, 사람들은 싸움 잘하는 사람보다, 말이라도 듣는 사람에게 표를 준다. 이재명은 위험해 보였지만, 적어도 질문을 받아 주었다. 반면 당신들은 질문 자체를 아애 무시했다.

지난 22대 총선 참패 이후 국민의힘은 여전히 ‘왜 졌는지’를 외부에서 찾는다. 언론 탓, 사법 리스크 탓, 청년들 탓. 하지만 진짜 이유는 하나다.

국민들이 당신들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 싫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오랜 실망과 무시당한 기억들이 만든 냉소의 결과다.

이재명 대통렁은 미심쩍은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신들은 확실히 실망스러운 사람들이었다. 그 차이는 작지만, 투표장에서 결정적인 무게를 가졌다.

대통령은 바꿀 수 있어도, 정치 혐오는 안 바뀐다

우리는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기대하지 않는다. 이미 여러 번 실망했고, 또 실망할 준비도 되어 있다. 하지만 정치는 어차피 완벽한 사람을 뽑는 게임이 아니다.

“차악이라도 덜 나쁜 쪽을 택하자”는 심정으로 국민들은 이재명을 선택했다. 그 선택의 본질은 분명 당신들을 밀어내기 위한 거부의 손짓이었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은 그 거부의 손짓을 ‘이재명 대통령지지’로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것은 단지, “이재명 대통령보다 당신들이 더 싫었다”는 정치적 단죄였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6.3 대선에서 얻은 48.4%지지율이 뜻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창권 대기자 ckckck1225@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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