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에너지 수입 압박… 인도의 친환경 정책과 충돌
미·인도 무역 관계, 새로운 국면 맞이하나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가 미국을 방문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 분위기는 2017년 백악관 장미 정원에서의 유쾌했던 장면이나 2019년 휴스턴에서의 뜨거운 악수와는 사뭇 달랐다. 이번 만남에서 모디는 할리 오토바이와 테슬라 자동차에 대한 무역 양보를 제안했으나, 트럼프는 새로운 관세 정책을 꺼내 들며 협상을 냉각시켰다.
트럼프는 회담 직전 "대등 관세(reciprocal tariff)"를 발표하며, 미국산 제품이 외국에서 부과받는 세율과 동일한 수준의 관세를 모든 수입품에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무역 파트너 국가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는 조치이며, 특히 인도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전면적 과세보다 더 강력한 이 정책은 인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뭄바이 코타크-마힌드라 은행의 경제학자들은 인도의 대미 수출 상위 10개 품목 중 9개가 6%에서 24%포인트의 관세 인상을 겪을 것이며, 전체적인 관세 증가율은 7%포인트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철강, 자동차 부품, 보석, 광물 연료 등 다양한 산업이 영향을 받을 것이며, 이는 인도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수출 경쟁력이 저하될 경우, 인도의 통화는 추가적인 압박을 받을 수 있으며, 글로벌 투자자들은 자본 유출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 올해 1분기에만 약 110억 달러의 외국인 투자 자금이 인도에서 빠져나간 가운데, 대등 관세 시행이 현실화된다면 추가적인 투자 철수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금리 정책이 더욱 복잡해지고, 국내 주식 시장 역시 불안정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대등 관세는 4월 1일부터 발효되며, 이는 모디가 트럼프와 무역 협정을 조율할 시간을 벌어주지만, 그 대가는 클 수 있다. 미국은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인도의 양보를 기대하고 있으며, 인도가 F-35 전투기와 같은 미국산 군사 장비를 추가 구매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또한, 뉴델리는 웨스팅하우스 전기의 원자로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방해해 온 민사책임법을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요구는 단순히 수입 관세 인하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보조금, 규제, 부가가치세, 환율, 지식재산권 보호 문제 등 다양한 무역 장벽을 제거하도록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인도 기업들에게는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도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인도 경제 전반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는 인도가 더 많은 미국산 석유 및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도록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인도의 국제 수지 악화와 녹색 에너지 전환 정책에 충돌할 수 있는 요소다.
현재 인도는 LNG 수요의 절반을 걸프 지역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미국산 LNG 비중이 증가할 경우 추가적인 운송 비용이 발생하여 인도의 에너지 수입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인도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친환경 수소 생산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미국의 요구가 지속된다면 에너지 정책에 상당한 변화를 강요받을 가능성이 있다.
백악관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미-인도 무역 회랑을 강조했으며, 이 회랑은 이탈리아와 이스라엘을 연결하는 항만과 철도를 포함한다. 기존의 인도-중동-유럽 경제 회랑(IMEC)은 2023년 발표 이후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않았으나, 이번 회담을 계기로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인도의 대표적 재벌 고탐 아다니에게 호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도 증시는 이러한 무역 회랑 계획에 대해 확신하지 않는 분위기다. 아다니 그룹의 핵심 기업들과 항만 부문 주가는 이번 분기에도 인도 주식시장 지수를 끌어내리고 있으며, 5년간의 강한 성장 이후 수익성 둔화로 인해 기업 가치 평가가 하락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120억 달러 규모의 세금 환급조차도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인도의 경제 관계는 트럼프의 새로운 무역 정책과 함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모디는 무역 협정을 통해 대등 관세의 충격을 최소화하려 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강경한 협상 태도와 추가 요구들이 인도 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향후 협상 과정에서 인도의 대응 전략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글로벌 경제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