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미얀마를 드나든 지도 벌써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필자는 지구촌의 오지라는 미얀마에서도 오지로 불리는 서북부 방글라데시와 국경 가까운 지역의 작은 섬에 머물면서 자주 일을 보아왔습니다.

미얀마의 옛 수도인 양곤에서 30시간 가까이 고물버스를 타고와서 다시 조각배로 바꿔타야만 도착할 수 있는 지역입니다.

대략적으로 양곤에서 약 30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지요.

이 지역은 최근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로힝야족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얀마는 전 국민의 90% 정도가 불교도인데다 정치도 불교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 까닭에 이슬람교도들인 로힝야족들과는 생각 자체도 다릅니다.

외모도 단번에 구분이 될 정도입니다.

19세기 제국주의 세력들이 세계를 지배할 당시 영국은 속국이었던 미얀마를 직접 통치했던 것이 아니라 인도는 영연방국으로서 총독을 파견하여 직접 통치하면서도 미얀마는 간접적으로 통치를 했었습니다.

미얀마를 인도의 한 주(州)로 편입시켜 인도 출신의 이슬람 교도들을 집중적으로 선발하여 미얀마로 파견한 후 그들을 중간 관리자로 삼아 간접 통치를 하였는데 국민들의 대부분이 불교도들인 미얀마에 이슬람교도들이 통치자로 대거 들어오면서 미얀마의 지배계층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자연스럽게 미얀마인들과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되지요.

영국은 이런 교묘한 방법으로 미얀마를 통치하면서 미얀마의 목재와 쌀, 보석 등 자원들을 수탈해 갔습니다.

1885년부터 1948년, 미얀마가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63년 동안 로힝야족들로 불리는 이슬람교도들은 대다수가 불교도인 미얀마 국민들을 심하게 착취하고 학대했다고 전합니다.

오늘날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로힝야족들을 상대로 하는 인종청소에 불교도들이 대부분인 미얀마 국민들이 동정심을 거의 느끼지 않는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과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미얀마 사태를 바라보면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우리 옛 말이 연상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영국은 자기네들이 단물은 실컷 빨아먹고 이용 가치가 없어진 로힝야족들을 그대로 미얀마에 둔 채 철수해버렸고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로힝야족들은 인도와 방글라데시 국경 부근인 이곳 라카인주(州)로 모여들어 피지배 계층으로 전락한 후 어려운 삶을 살고있는 것입니다.

미얀마 서북부 지역의 시골 마을들을 여행하다가 그 지역 주민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이 로힝야족들에 얼마나 깊은 반감과 한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이슬람교인들이 없다"를 마을의 큰 자랑으로 여기는 것에서 그들의 뿌리깊은 한(恨)을 엿볼 수 있는 것이지요.

제 3자의 입장인 필자는 국제정치적인 문제로 촉발된 로힝야족 사태가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배대열 칼럼니스트 BDYTYY@nvp.co.kr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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