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필자는 이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하여 때로는 쓴소리를 전하고 때로는 이 사회 구석구석의 착한 미담을 찾아내어 감동을 전하기도 합니다. 

어느 덧 제3의 언론으로 자리매김 하였고 독자분들의 수는 계속하여 늘어나고 있습니다. 

독자분들의 사랑과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필자는 잼버리 개영식 날 새만금 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잼버리 조직위원회 웰컴센터 옆 프레스센터에서 접수 절차를 마치고 점심을 맞아 식당을 방문 하였습니다. 

이곳 식당은 100여평의 식당에 1일 1300여명의 대회관계자및 기자들이 식사를 하는 곳 이었습니다. 

일반인들도 식권이 없을 경우에 8천원의 비용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점심식사는 냉국을 포함한 5찬식으로 생각보다 맛이 있었고 특히 돼지불고기 맛은 일품이었습니다. 

함께식사를 한 "뉴스비전"에 조모 기자는 맛이 있었던지 추가로 더 먹는 모습이었습니다. 

식사 후 다시 프레스센터에서 폭염속의 더위를 식혀야 했습니다. 

이날 잼버리 개영식은 개인 차량은 영내에 들어갈 수 없는 규정으로 기자단 버스는 점심 후 2시에 3대의 관광버스와 봉고차에 나누어 타고 영내로 향하였습니다. 

카메라 기자들은 무거운 장비들을 챙기어 다니느라 폭염에 더욱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버스는 델타구역에 도착하여 기자들을 뜨거운 현장에 한바탕 쏟아놓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기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영내 각국의 청소년들은 기자들을 반기는 모습이었습니다. 

폭염속에서도 각 국의 청소년들은 카메라에 포즈를 취하고 방송 카메라를 향하여 자국의 전통 의상을 선보이며 자랑하기에 바빴습니다. 

에콰도르에서 온 청소년들은 단체로 카메라를 향하여 포즈사진을 취한 후 자국의 언어로 구호를 외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근처의 편의점에서는 시원한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사기위해서 길게 줄이 늘어선 모습이었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모습도 보였고 기자들과 인터뷰 후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하늘 위에는 8대의 공군 비행단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시범 묘기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여러대형으로 진행하다가 흩어지는 모습은 아슬아슬 한 묘기였고 형형색색의 연기를 창공에 수 놓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델타 1구역 입구 한 켠에는 유일하게 케나프 식물이 2~ 3m크기로 한무리의 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잼버리 영내구역에는 유일하게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식물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잼버리 조직위에서 좀 더 일찍 식재를 허용했으면 4~5m 크기의 케나프 식물이 숲을 이루어 청소년들이 보는 것 만으로도 시원한 느낌이 들었을 것 입니다. 

케나프 모회사는 조직위에 요청을 하였고 대회기간 1개월을 앞두고 승인하여 업체는 많은 장비와 비용을 들여 그나마 정성껏 가꾼 결과 그 만큼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단을 이끄는 조직위 프레스센터 직원은 다시 2구역으로 걸어서 안내를 하였고 폭염속에 기자들은 강행군을 하며 뙤약 볕에 모두는 얼굴과 등에 땀이 맺혀있었습니다. 

폭염속에서도 기자들은 취재에 열을 올렸고 그때마다 세계각국의 청소년들은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멋진 포즈와 인터뷰에 응해 주었습니다. 

푹푹찌는 한 낮의 폭염은 청소년들의 살갗을 빨갛게 달아오르게 하였습니다. 

3구역까지 안내되어 취재를 하던 중 필자는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할 상황이 생겼지만 단체로 타고 온 버스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마침 KBS차량을 얻어타고 조직위 웰컴센터로 먼저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필자의 차량 안 운전석에는 앉기가 뜨거울 정도의 햇볕에 노출되었고 계기판 온도는 섭씨 39.5도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필자는 차량을 새만금 전시장 방면으로 기는 중 우측의 전망대에 잠깐 들렀습니다. 

전망대는 광활한 잼버리 현장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고 형형색색의 텐트를 친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2만7천여개의 텐트와 그늘막이 260여만평의 광활한 새만금 뻘밭위에 펼쳐진 모습은 이곳을 찾은 많은 관광객들에게는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 하였습니다. 

필자는 사진과 동영상을 찍은 후 전망대에서 내려오려는 순간 마침 이곳에 관광 온 한 무리의 연세드신 어머니들의 잼버리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여야했고 사진과 동영상을 담아달라는 부탁에 무려 6명의 어머니들의 청을 들어주어야 했습니다. 

서울에 사는 딸과 아들들에게 잼버리 현장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보내 자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필자는 변산과 격포를 둘러보고 저녁 약속을 한 전주로 향하였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던 중 필자의 손에 매일 달고다니는 수첩이 없어진 것을 늦게서야 발견하였습니다. 

그동안 전에도 수첩을 한번 잃어버린터라 조심한다고 했는데 차안 어디를 찾아보아도 없었습니다. 

수첩에는 앞으로 칼럼을 써야 할 중요한 자료들이 기록되어 있었기에 난감하였습니다. 

지난 번 잃어버린 수첩을 교훈삼는다고 그나마 속 표지에 연락처를 기록 해 놓았지만 누군가 주었다 할지라도 일부러 수고를 하기에는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수첩의 행방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KBS 차량안에 두고 내렸을 거라는 생각이 미치자 내일 연락을 취해 볼 생각이었습니다. 

밤 12시가 거의 될 무렵 칼럼의 글을 쓸려고 막 컴퓨터를 켜고 있는 찰나에 모르는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이 시간에 모르는 전화의 통화음이 몇번 울리자 순간 누군가 수첩을 주었던 분이 했을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미치자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감은 적중 하였습니다.
수첩을 주었다는 어느 착한 남성의 음성이었습니다. 

"선생님 수첩을 어디에서 주었습니까"? 

"아~네"
"전망대에 있었습니다"

아뿔싸 그때 비로소 생각났습니다. 

관광 온 어머니들의 부탁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담아주느라 정신이 팔려 의자위에 올려놓은 수첩을 깜박잊고 그냥 나왔던 것입니다. 

그랬던 것을 KBS 차량에 놓고 내렸다는 생각에 치매 검사라도 해 보리라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선생님 어디에  사세요? 

"네ᆢ저는 서울에서 왔습니다"
"수첩을 이곳 전망대에 그대로 놓고 가도 되겠지요"?

"아~ 아뇨"
"그럼 누군가 진짜 가져가기라도 한다면 저는 영영 잊어버리게 되니 혹 선생님 어디로 가시는지요"?

"그럼 경찰관에게 맡길께요"! 

"아니 그 시간에 경찰관이 옆에 계시나요"?
"아뇨ᆢ파출소에다 가져다 놓고 전화 드릴께요"! 

"선생님 그러지 마시고 선생님이 가시는 숙소나 식당 또는 가계에 맡겨놓으시면 제가 찾으러 가겠습니다"

"아ㅡ네"
"알겠습니다"

전화는 끊겼고 필자는 참 고마운 분이라 생각하며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필자는 수첩 행방의 전화를 받고 한 가지 느낀점이 있었습니다. 

전망대에 갔던 시간이 오후 4시쯤이었는데 4시에서~밤 12시가 되어가도록 무려 8시간동안 아무도 수첩을 가져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지갑이 아니었고 수첩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남의 물건에 손을대지 않는 우리나라 국민성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 전망대는 주차장이 없을 정도의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라 계속하여 오느내리며 사진을 찍었을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화 주신분은 밤 12시가 되었는데 주위에 아무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에 누군가 분실 물건이라 생각하고 수첩을 들여다 보았고 친절하게 수첩속의 전화로 주셨던 것 이었습니다. 

또한 그 분은 더 큰 믿음이 있었던지 그곳에 수첩을 그대로 놓을테니 가져가라고 했던 것 입니다. 

다음 날 아침 8시쯤 부안 하서 파출소라고 전화가 걸려왔고 수첩을 찾아가라는 친절한 경찰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어찌보면 작은 헤프닝이었지만 많은 교훈을 얻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글을 읽은 많은 독자들께서 공감을 표시하고 자신의 단체 밴드나 카톡에 퍼나르고 오히려 필자의 글을 제 삼자가 다시 보내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의 양심과 자부심에 대해 다시한번 올려드립니다. 

이형권 칼럼니스트 leehyung@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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