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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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위치에 얽매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기만의 경험과 생각에 갇혀 살기 쉽다.

그래서 나와 다른 입장을 내는 사람들을 만나면 일단 거부부터 하고 시작한다.

그게 사고의 출발점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통상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인 작용이 앞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금번 윤 대통령의 방일 문제에 대해 극명하게 반응이 다르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은 “일본과의 기존 협력 채널 복원 노력을 하면서 공급망 안정화, 핵심 첨단 기술 진흥 등 경제 안보 분야로도 협력 범위를 확장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제1 야당 대표는"윤 대통령은 선물 보따리를 잔뜩 들고 갔는데 돌아온 것은 빈손도 아닌 청구서만 잔뜩 이다.“라며 방일 성과를 ‘굴욕외교’ 라고 폄하했다.

일본 여러 언론들도 “국내의 극렬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지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일본 방문을 택한 윤석열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하고 회담에 임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금번 일본정부의 반응은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고 우리 국민들은 생각하고 있다.

야당 대표 언사처럼 “일본에 항복하고 조공을 바친 것이다"라고 까지는 생각지 않아도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 사관이 변하지 않고 있구나 하는 섭섭함과 괘씸함이 여전히 뇌리를 떠나질 않는다.

강제 징용 배상 청구권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인권이다. 실제 당사자가 겪은 고초와 수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이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해야 한다.

잔인했던 일본 식민지 지배의 잔재와 트라우마로 인해 여전히 적지 않은 희생자들이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다. 

더욱이 ‘진정한 사과’ 없는 일본의 입장에 대해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분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 변천에 따라 상황과 분위기도 바뀌는 것은 세상의 이치이다.
지난달 27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여론조사 기관 모노리서치를 통해 청년세대 6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일관계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일관계 개선 필요성에 대해 청년세대의 71%(20대 73.1%, 30대 68.7%)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미래의 동냥’인 청년세대를 대표하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71%가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양국협력을 통한 상호 경제적 이익확대(45.4%)’가 가장 많았다.  이어 ‘상호협력을 통한 중국의 부상 견제(18.2%)’, ‘북핵 대응 등 동북아 안보협력 강화(13.3%)’ 등이 뒤를 이었다.

그렇다고 과거의 일본이 우리에게 안겨준 엄청난 상처와 항일 정신을 잊지 말자는 의미는 아니다.

이제 우리도 과거의 쓰라린 역사를 딛고 일본과 대등한 처지를 내다보고 있는 10대 경제 국가로 변신되었다는 점이다. 이젠 과거를 딛고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다.

“전사불망(前事不忘) 후사지사(後事之師)”이다. 과거를 잊지 않고 훗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힘이 없어 처절하게 당했던 과거의 쓰라린 기억을 더욱 반성해서 자립자강(自立自强)을 위한 실천적인 행동이 더 절실하다. 힘이 뒷받침 되지 않는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 일뿐이다.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한다’고 했다. 조화를 이루되 함부로 타협하거나 같아지려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해와 관용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반면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이다.

화이부동하려면 너와 나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검색(檢索) 해 보아야한다. 차이를 인식하고 분명한 선을 긋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 단절하지 않는다. 선 너머를 탐색(探索)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관계를 모색(摸索)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일치단결해서 일본을 이기기 위해 70년을 '와신상담(臥薪嘗膽)'했다. 어쩌면 과거 식민지 시대 항일정신(抗日精神)으로 피와 땀을 흘리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이제 명실상부하게 전자산업·철강산업·조선사업·중화학 산업 분야에서 일본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

이는 한일 갈등의 역사적인 골을 뛰어넘어 은인자중(隱忍自重)했던 일본과의 교류협력을 통한 역사적 산물이라는데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잘살아 보세'라는 처절함을 갖고 고개를 숙여가며 지혜롭게 핵심가치를 찾아냈다. 

그야말로 잠시 발톱을 감춘 절묘한 묘수(신의 한수)였다. 박정희 정부는 철강기술을 가져와 신일본제철을 이기듯이, 그 이후 역대 대통령들도 이러한 전략적 사고를 이어받아 삼성이 반도체 기술을 가져와 마스시다와 NEC를 이겼고, 현대가 조선기술을 가져와 가와사끼 조선소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한일 관계는 과거의 걸림돌은 제거 하되 이를 계기로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세기를 뛰어 넘는 항일 감정으로만 일본을 대하기에는 너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진정으로 MZ세대에게 물려줘야 될 유산은 부강한 대한민국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과거를 잊은 국가에 미래는 없다” 라는 말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시점이다. 과연 대일관계를 놓고 우리의 국익을 위해 ‘교류와 협력’과 ‘봉쇄와 차단’ 두 가지 방책을 선택해야 한다. 무엇이 우리를 진정으로 위한  길인가 자문하고 싶다.

여야 정치권 모두 구한말 힘(力)이 없어 갈팡질팡 했던 불운한 우리의 치욕적인 역사를 다시금 기억해야 한다, 단순한 감정으로만 일본을 대하지 말고 국가경쟁력 제고와 미래성장 동력 창출,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북한 위협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일본은 험한 파도와 외로운 바다를 이겨내고 국제화를 이룬 강인한 섬사람의 기질을 구비하고 있다. 다른 (육지)사람에게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아집의 근성'이 있다.

우리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은 격이 되었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얻어 내기 위해 지금부터 집요하게 압박해야한다.

국제사회의 동조와 지지를 얻어내는 치밀한 대일외교가 절실하다.

이제부터는 항일(抗日)을 넘어 극일(克日)이다. 눈에 보이는 ‘걸림돌’은 제거 하되 눈에 보이지 않는 '받침돌' 과 ‘디딤돌’을 놓는 진정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게 고수(高手)이다.

정치는 말(口)로 하지만 경제와 안보는 손(手)으로 한다. 그래서 수(手)는 ‘바둑이나 장기에서 두는 기술’의 의미를 갖고 있다. 대일 외교에서 치밀한 수(手) 계산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상기 칼럼니스트 sgrhee21@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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