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도봉의 산세에 인왕이 백호에 있어 산 꼭대기를 쳐드니 형살(刑殺)이 있고, 삼각의 산세에 도봉이 청룡에 있으므로 기운이 샌다. 그래서 병란(兵亂)이 있고, 성현이 나오지만 요절하고, 어진 신하가 나오지만 가혹한 화를 입는다”. 이는 정감록(鄭鑑錄) 중의 ‘무학비결(無學秘訣)’편에 나오는 말이다. 

무학대사가 한양천도를 권할 때, 삼각산과 인왕산 등의 산세를 보며 언급한 이 경귀는 인왕산과 삼각산 줄기가 왕궁터로서 좋기는 하나 형살과 사화(史禍)가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이 액운을 예방하기 위해 무학대사는 궁궐을 지을 때 인왕산을 뒤로 하고 동향을 주장했으나, 정도전이 삼각산을 뒤로 하고 남향으로 정했다. 때문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병란이 일어났고 사대사화가 일어났다는 사가들의 해석이 있다.

요즈음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본청으로 이전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500년 조선왕조의 사직터가 아니 고려의 남경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천년 왕궁터가 갑자기 자리를 이전하게 된 것이다. 이에 역사적인 서움함이 적지 않다. 과연 인간세계의 지배자이자 하늘의 아들이라는 왕의 집무 장소와 거처였던 역사적 왕궁터가 하루 아침에 자리를 옮겨야 하는 가? 이에 상당한 이유가 없이는 국민납득이 쉽지않을 것이다. 

우선 대통령 집무실 이전론자들의 변을 종합해 보면, 구중궁궐에서 나와야 국민과의 소통이 잘 되고 권위적인 대통령상을 지울 수 있다는 점과, 현재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동과의 거리문제 해결이 필요하고, 경치좋은 정원과 웅장한 건물을 시민에게 되 돌려주어 국민에게 쾌적한 공원과 공간을 제공한다는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문제점으로는 엄청난 이전비용과 이전시기의 안보 공백 및 경호문제, 대통령 출입시 교통문제, 용산일대의 개발 제한에 대한 국민 반발 등이 거론된다. 

여기서 우라가 집고 넘어가야할 것은 굳이 꼭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대통령과 국민간 소통이 잘 되고 권위적인 대통령상이 사라지며, 민주주의와 국가가 발전되느냐” 하는 전제의 타당성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국민과의 소통이라면 매주 1회 이상 상시 기자회견을 하면 될 일이지 매일 공원이나 시장에 나가 국민들과 악수한번 하고 갑작스런 말한마디 듣는다고 진정한 소통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청와대가 구중궁궐에 있어 권위의 상징이 되고 국민과의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지적은 일반적인 통념일 뿐, 실제 대통령 본인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달린 문제다. 청와대에서 근무해도 대통령이 독선과 독주를 아니하고, 내각에 무소불위의 간섭 없이 주워진 권한을 행사토록하여 국정을 원만이 이끌면 된다. 아울러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시에는 겸손하고 낯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는 정성이 긷들면 될 일이다. 

윤당선인의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은 문화적, 예술적 공간의 논쟁에서는 통하는 말일지 몰라도 대통령의 국정태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도대체 대통령이 근무하는 장소가 그의 집무능력 및 태도와 무슨 함수가 적용된다는 말인가? 

다만 현재 청와대가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동과의 거리가 멀어 수시 대화가 힘들고 급한 보고시에도 시간이 걸리는 문제는 당장 시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문제라면 대통령 집무실을 반으로 나누어서라도 비서실장, 안보 및 정책보좌관 등 최고 비서진들의 사무공간을 만들고, 그럴 공간이 없다면, 비서동을 바로 대통령 집무실 곁에 신축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백악관 처럼 미국민들이 백악관을 바라보며 산책하기를 원한다면 청와대 일부를 개방하여 수시로 우리 시민들이 경호권을 침해하지않는 범위까지 들어와 산책하도록 환경을 만들면 될 일이다. 

하지만 현재 민주주의 국가 정상들의 집무실이  청와대와 같은 산속이 아니라 도심에 위치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도 없다. 영국 수상은 다우닝10번가에 집무실을 두고, 미국, 독일, 일본 등의 최고 통치자 집무실들도 궁궐터가 아닌 도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현실이 “우리도 탈권위적인 대통령 집무실이 필요하니 도심으로 옮기자”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한다

그럼 여기서 장담점의 문제들을 거론해보자. 단점으로 지적되는 비용문제는 기재부의 보고에 의하면 약 496억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는 엄청난 규모의 청와대 정원과 건물들을 시민에 개방해 준다는 측면에서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경호상 문제점은 국방부 건물도 지하 방커가 있고, 주변이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어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방부 직원 및 시설이전 과정에서 안보공백이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아무리 무도한 북한이라도 한 두달 사이에 남침할 염려는 없다. 괜히 하는 소리다. 합참이 있고 한미 연합사령부가 존재한다. 

용산권 개발문제와 관련하여는 건물의 고도 제한이나 개발범위 등을 놓고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이해 당사자(stakeholder)들과 적절히 타협하면 해결방안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 관저 문제는 한남동 육참총장 관저 등이 거론되어 경호상 문제가 있고 출퇴근시 교통체증을 유발한다는 단점은 피할 길이 없다. 이를 위해 조속히 관저를 국방부 부지 등에 신축해야 할 것이다. 

한편, 민주당 일각에서 주장한다는 용산터가 과거 일본군이 주둔했다고 친일적 발상이라는 말은 너무도 구상유치의 궤변이다. 일제 점령기에 일본 부지가 아닌 곳이 어디있는가. 청와대도 일본총독부가 있었던 부근이다. 또한 비용이 1조원 이상 소요된다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아니 전혀 신축건물 하나 안 짓는데 무슨 돈이 그리 많이 든단 말인가.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들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주장했고, 현 윤 당선자의 의지가 그렇게 강하다면,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는 것도 타당성을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이 문제는 차분히 전문가들의 공청회와 대국민 소통을 다시 거쳐 충분한 문제점과 대책을 검토한후 시간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대통령 임기와 동시에 다른 집무실에서 근무를 시작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설혹 공약을 그리 했다해도 현실적으로 국방부 및 합참 등의 연쇄적 이전이 필요하고, 여타 다른 이전 계획도 차질없이 준비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렇게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이전한다고 하니 가장 아타까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천년 고도로서 최고 통치의 소도(蘇塗)를 상징하는 경복궁과 청와대 터를 이전하면 국가의 정통성과 상징성, 장구한 역사성에 대한 상처를 입는다는 점이다.

유구한 전통을 가진 국가들이 아직도 왕궁을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한다. 러시아의 클램린 궁, 프랑스의  엘지제궁 등 몇 백년 전통의 왕궁이 지금도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영국은 버킹검궁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거주하며, 국가원수로서의 역사적 전통을 이어간다. 중국은 북경의 ‘중난하이(옛 황실의 정원)’를 국가 주석과 주요 정부요인들의 집무실 겸 거주지로 사용한다 

모쪼록 윤 당선자는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에 힘입어 당선된 만큼 진정한 민의를 수렴하여 첫 발부터 무리의 패착을 두지 말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여유를 갖고 추진하기 바란다. 끝 

한형동 칭다오대학 석좌교수 hanhd@nvp.co.kr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비전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