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민 전 프로배구 선수[사진=뉴시스]
고유민 전 프로배구 선수[사진=뉴시스]

 

얼마 전 故고유민 전 프로배구 선수의 극단적인 선택을 두고 여론은 ‘악성댓글’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를 둘러싸고 일각에서 “뭔가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11시경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자배구 고유민 선수의 자살 사건 구단의 횡포에 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고유민 선수의 팬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글에 따르면 고 선수를 죽음으로 몰아간 원인은 비단 ‘악성댓글’만이 아니었다. 고 선수의 유족들도 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 ‘악성댓글’이 아니라는 주장해 고 선수의 죽음을 둘러싼 배경이 무엇인지 주목되고 있다.

전 현대건설 고유민 [사진=뉴시스]
전 현대건설 고유민 [사진=뉴시스]

 

▼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현대건설 팀 관계자들이 고 선수에게 노골적인 냉대를 한건 지난 2월이었다. 현대건설 주전 리베로 선수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게 되자 고 선수가 그 빈자리를 채웠다.

고 선수는 원래 리베로의 포지션이 아니었기에 활약이 부진했고 이에 각종 악성 댓글공격이 쏟아졌다.

고 선수가 남기긴 메모에는 “갑자기 들어가야 할 땐 너무 불안하고 자신도 없었다. (중략) 미스하고 나오면 째려보는 스태프도 있었고 무시하는 스태프도 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전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쓰여 있었다.

고 선수의 유족들 역시 “(현대건설 코칭스태프들이) 사람을 완전 투명인간 취급 한다더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26일 경기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9-2020 V리그 현대건설과 흥국생명과의 경기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로 인해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현대건설 이도희 감독이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26일 경기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9-2020 V리그 현대건설과 흥국생명과의 경기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로 인해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현대건설 이도희 감독이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이도희 감독의 갑질? “아무데도 못가!”

현대건설은 지난 5월 1일 고 선수를 임의탈퇴로 공시하며 구단 허락 없이는 다른 프로팀으로 이적이 불가능 하도록 족쇄를 채웠다.

고 선수의 유족들은 “현대건설이 유민이와 비슷한 케이스였던 선수는 자유계약 신분으로 풀어줬다. 하지만 유민이는 임의탈퇴로 묶어놔 어느 팀에도 못 가게 했다. 완전히 선수를 죽이려고 작정했던 것”이라며 분개했다.

이도희 현대건설 감독의 횡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 감독은 고 선수가 임의탈퇴하자 곧바로 다른 선수에게 고 선수의 등번호 7번을 내줬다. 선수에게 등번호는 이름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팀을 영원히 떠나 다른 팀으로 이적했거나, 은퇴했을 때 넘겨주는 것이 등번호다. 언제든 복귀가 가능한 임의탈퇴 선수, 게다가 팀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수의 등번호를 다른 선수에게 넘겨주는 행위는 상당히 모욕적인 행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고 선수의 친구는 “유민이가 나에게 전화가 와서 ‘내가 지금까지 선수로 뛰면서 뭘 남겼는지 모르겠다. 난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통곡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감독의 ‘감독으로서의 자질’에 비난의 화살이 꽂혔다. 이전부터 이 감독은 주축 선수의 부진이나 부상에 대비한 플랜B 없이 주전 위주의 기용을 고집해 문제가 수차례 발생한 바 있다. 이러한 이 감독의 고집이 결국 고 선수를 ‘리베로’로 내몰았고, 이는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현대건설에 남아있는 다른 선수들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현대건설의 다른 선수들이 고 선수의 죽음으로 드러난 현대건설 코칭스태프의 비상식적인 태도와 이 감독의 갑질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고 선수의 사망 이후 이러한 태도에 대해 비난이 거세지자 현대건설은 등번호 7번을 20번으로 교체한 것으로 확인됐다.

1월 23일 오후 수원 실내 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9-20 V리그 현대건설과 인삼공사 와의 경기, 현대건설이 승리 후 환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1월 23일 오후 수원 실내 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9-20 V리그 현대건설과 인삼공사 와의 경기, 현대건설이 승리 후 환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현대건설의 입장

고 선수의 팬들은 “지금 팬들의 여론은 구단의 편이 아니다. 심지어는 팀을 버리겠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며 “제대로 된 상위기관의 조사만이 현대건설 구단의 부조리를 잡아낼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고 선수의 어머니는 “내가 원하는 건 이것 뿐 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현대건설 관계자들이 고인에게 진정으로 사과하는 것, 이것이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우리 유민이의 한을 풀어 주는 것이다.”고 전했다.

이어 고 선수의 어머니는 “다른 선수들도 내 딸 만큼이나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이 제대로 밝혀져 다른 선수들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해당 청원 게시글에는 현재 410명이 동의했고, 수사기관에는 해당 내용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8월 2일 “고유민의 휴대전화 등에 대한 영장을 발부 받아 디지털 포렌식(과학적 데이터 복구·수집 분석 기법)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러한 논란에 대해 현대건설 관계자는 지난 4일 “우리가 유민이에게 더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한 건 후회스럽지만, 그렇다고 팀 내에서 고유민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선수와 소통이 없었다는 건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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