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 도서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 것에도 없었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보름 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토지'의 원고를 썼던 것이다. 100장을 쓰고 나서 악착스러운 내 자신에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긴 암투병 끝에 2008년 세상을 떠난 박경리 선생은 암 선고를 받은 시점이 토지 제1부를 연재 중이던 때였다.  

"1946년 결혼한 박경리는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편을 잃었고, 몇 년 후에는 어린 아들마저 세상을 떠난다. 참척의 고통은 혼자만의 몫이었다.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본문 중)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마주하며 대작을 집필해온 박경리 삶의 이면은 이러했다.

이달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출간된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는 인생을 걸고 글쓰기를 하며 살아온 25명 여성들의 삶과 철학이 담겨 있다.

박경리 선생을 비롯해 마르그리트 뒤라스, 버지니아 울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에밀리 브론테, 수전 손택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태어난 시기도, 살았던 장소도, 쓴 글의 성격도 모두 제각각이다. 

공통점은 모두 좋은 책을 많이 읽고 필사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취미로 글을 쓴 경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여성이란 이래야 한다'는 식의 사회적 인식 차원의 억압과 '여성의 글은 허영에 들뜬 취미에 불과하다'는 무시에 맞서면서, 가장 나다운 나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저자 장영은은 이들에게 글은 표현이자 싸움이고, 노동이자 삶을 사는 방식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삶을 통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냈다고 해석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 온 여성들의 생애를 복원하고 이들의 말과 글을 널리 전하고자 이 책을 준비했다고 말한다.

각 여성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전기(傳記)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는 듯하다. 해당 작가가 맞서고 싸웠던 당대의 사회적 환경이나 상황 등을 집중 조명하며 풀어낸 구성이라 집중력 있게 살펴볼 수 있다.

글과 말의 힘을 믿었던 여성 작가들, 불행이나 불운이 글을 쓰겠다는 의지를 결코 꺾을 수 없음을 삶으로 증명한 이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256쪽, 민음사,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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