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출신 경영인 4400억원 수익에도 작가에겐 달랑 1850원 지급

3D 애니메이션 '구름빵'이 지난 6월 6일부터 11일까지 프랑스 안시에서 열리는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본선 경쟁작으로 진출했다.[사진=뉴시스]

그림책 '구름빵'의 작가 백희나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 문학상(ALMA)'을 수상해 문단의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한솔교육의 이른바 ‘매절계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구름빵은 텔레비전 시리즈와 뮤지컬로도 제작돼 인기를 끌었고, 캐릭터 상품으로도 큰 흥행을 거둔 작품이다. 
백 작가는 출판사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매절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매절계약’이란 작가가 출판사에 저작권을 일괄 양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백 작가는 출판사로부터 받은 저작권료와 지원금이 185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이 책을 출판한 한솔교육은 4400억원의 부가가치를 얻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최근 작가들과 독자들 사이에서 “갑질에 의한 불공정계약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아울러 문단계에서는 신인 작가들을 상대로 한 출판계의 불공정 계약 관행에 대한 논란도 불붙고 있고 독자들 사이에서는 한솔교육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터널 속에 갇힌 백 작가

백 작가는 출판사 등을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냈으나 1·2심 모두 패소하고 울분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1월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원심에 이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자 출판계의 불공정 계약 관행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업계의 전망이다. 
백 작가는 출판사와 맺은 조항에는 ‘저작인격권을 제외한 저작 재산권 등 일체의 권리를 한솔교육에 양도한다’는 부분이 포함됐는데 소송에서 이 부분이 결정적으로 작동했다.

법원 판결 후 백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법이 창작자의 희망을 저버리고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고 한탄하면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가보겠다.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문단계의 한 인사는 “매절계약은 출판사가 작가의 모든 권한을 갖는 출판업계 노예계약”이라며 “책이 잘 팔려도 작가는 소액의 푼돈 외에 창작의 공로로 가질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또 이 인사는 “어떻게든 처음 책을 내기에 급급한는 작가는 출판사가 제시하는 매절 계약을 거부하기 어렵다”면서 “심지어 출판사는 매철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비인기 작가나 신인 작가들은 거의 창작물을 빼앗기다시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구름빵 매절계약’에 대해 한솔교육 측은 “작가의 요구대로 계약내용을 수정했을 뿐만 아니라 저작권도 작가에게 돌려줬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단계는 “교묘한 말장난”이라고 일축하고 있어 양측의 입장이 다소 엇갈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면 이렇다. 

한솔교육 갑질 비난 도마

‘구름빵’은 원작자인 백 작가가 계약을 할 때 단행본이 아닌 전집 중의 한 권으로 계약했고, 그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출판사에게 전부 귀속하는 것으로 계약했다는 게 한솔 측의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백 작가는 앞으로 나올 모든 ‘구름빵’과 관련된 모든 상품에 대해 조금의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
매절계약으로 시작한 작품이 상상 이상의 히트로 이어졌을 경우에는, 원작자에게 인세로 계약 조건을 바꿔 이익을 분배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솔교육은 그렇게 하지 않고 철저히 계약을 준수했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 “구름빵이 공전의 히트를 치자 한솔교육이 백 작가에게 계약 갱신 대신 일정한 금액을 일시불로 제안했으나 백 작가가 거절했다”는 소리도 돌고 있다. 
백 작가가 이같은 제안에 대해 혹시나 훗날 있을지 모를 저작권 분쟁 등에 대비해 모두 거절했다는 것이다. 한솔교육측이 제안한 ‘합의금'을 받았을 경우 향후 저작권 양도를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단계가 한솔교육 측의 주장에 대해 부정적이다. 저작권을 돌려준 내막 때문이다. 백 작가는 지속적으로 출판사로부터 저작권을 돌려받기 위한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출판사 측에서 작가와 맺은 계약서를 수정하고 저작권, 출판권, 2차 저작권에 대한 포기 의사를 밝혀 구름빵은 작가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한솔교육의 저작권 꼼수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백 작가는 ‘구름빵’에 공저자로 표기되어 있는 김모 씨에게 저자 표기 제외를 한솔교육 측에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백 작가는 도의적인 차원에서 출판사로부터 저작권을 돌려받았는데, 한솔교육측은 ‘구름빵’의 공저자인 김모씨의 저작권에 대해서는 발을 뺀 것이다. 김모씨의 저작권은 사실상 한솔교육의 저작권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백 작가가 김모씨의 저작권까지 자신에게 돌려달라고 요구한 이유는 김모씨가 한솔교육의 출판담당직원이기 때문이다. 한솔교육은 매절계약을 위해 관행적으로 회사직원을 공저자에 이름을 올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백 작가에게 김모씨에 대한 저작권을 넘기지 않으면 저작권 전부를 백 작가에게 주는 게 아니라 형식만 주는 것처럼 취했다는 이야기다. 

백 작가의 요구에 대해 한솔교육 측은 “공저자인 김모씨의 저작권은 법적으로 효력이 없으니 인정해 주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출판계에서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김모씨는 한솔교육에 재직 당시 업무의 일환으로 구름빵 제작에 참여한 것이기 때문에 이 역시 돌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결국 소송이 진행됐고 이에 대해 서울남부지방법원은 “'구름빵'에 삽입된 36장의 사진은 사진 작업의 전 과정을 기획하고 실제 담당한 백희나 작가가 저작자”라며 “그 과정 중 본촬영 작업에서 사진촬영을 담당한 것에 불과한 한솔교육 직원 김씨는 창작에 대한 재량권 없이 작업에 보조자로 참여한 것이므로 일련의 창작적 노력의 결정체인 사진의 저작권은 백 작가에게만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백 작가를 단독저작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2019년 8월달에 올라온 백희나 작가의 트윗에 따르면 출판사는 아직도 백희나 작가에게 저작권과 저작권비를 돌려주지 않았다. 

[사진=백희나작가 SNS캡쳐]

한솔교육 불매운동 조짐

이번 백 작가의 매절계약 사건이 알려지면서 ‘구름빵’의 팬들이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무명작가들의 고혈을 빨아 부를 축적하기에 급급한 한솔교육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성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 동화책 ‘구름빵’을 들려주던 엄마들은 “한솔교육의 부도덕함에 실망했다”고 입을 모은다. 
한 네티즌은 “출판사가 이렇게 무명작가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노벨문학상이 없는 것”이라고 한솔교육을 비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헤리포터의 경우 수익의 상당부분을 작가가 가져갔다”며 “당시 헤리포터의 작가 조엔롤링은 무명이라는 이유로 12번 거절당하고 13번째 출판사에 겨우 원고계약을 했는데 이때 이런 매절계약 강요는 없었다”고 우리 출판계에 날을 세웠다. 

백 작가 사건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한솔교육의 변재용 회장을 작심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백 작가 저작권 문제가 세간에 알려지자 ‘구름빵’ 팬들과 문단계는 “출판계의 거물로 꼽히는 변 회장이 문학생태계 정화에 나서지 않고 오히려 작가들의 재능을 이용해 기업배불리기에만 앞장서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한다. 

진보진영의 자본주의

의외인 점은 한솔교육의 변재용 회장이 대표적인 운동권 출신 기업인이라는 것이다. 
또 한겨레신문 창간위원이며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이 신문사 창간위원에는 박원순, 임종석, 조국, 공지영, 김어준, 이수호 등등을 비롯해 수많은 사회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이름을 올렸는데, 변 회장도 그 중 한 명이다. 

변 회장은 ‘71동지회’의 일원이다. 71년 박정희 정권의 위수령 발동으로 대학에서 제적된 후 군대에 끌려갔던 당시 학생운동 주역들의 모임을 가리킨다. 
대표적으로 판소리 연출가 임진택씨가 ‘71동지회’ 회원이다. 이 단체의 70, 80년대 학번 세대는 이 단체의 핵심으로 꼽힌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여기에 속해 있다. 기업인 중에서는 증권업계 ‘71동지회’ 회원 SK투신운용 최명의 사장과 웅진닷컴 김준희 대표, 팍스넥 박창기 전 대표 등이 변 회장과 함께 거론된다. 2000년 11월28일 출범한 민주기업가회의는 서울대 운동권 출신 기업인 50여명의 연대 조직인데 여기에 변 회장이 속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2015년 4월에는 일명 '구름빵 보호법'이라고 불리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매절계약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저작권법의 일부를 개정하고 창작자가 유통업자 등에게 공정한 보상을 법적 권리가 신설된다고 한다.  

그러나 문체부가 저작권은 개별 민간관계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고수중이다. 결국 19대 국회 임기 내에 법안이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발의한다고 하지만 발의와 국회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구름빵’은 다양한 형태로 가공돼 대표적인 ‘원소스 멀티유즈’(OSMU) 성공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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