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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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주간지 포커스는 8월 10일 보도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유럽 의약품에 최대 250%의 ‘공포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며 제약업계를 정조준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17개 유럽 제약 그룹에 서한을 보내 9월 29일까지 가격을 인하하라는 최후통첩을 전달했으며, 이는 유럽 제약업계에 전례 없는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은 높은 관세를 무기로 유럽 제약사들로부터 ‘구속력 있는 가격 인하 약속’을 받아내려 하고 있으며, 이에 맞서 유럽도 보복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이번 사안은 안정적인 경영 환경에 익숙했던 유럽 제약업계에 정치적 위험이 직접적으로 이익과 투자 계획을 위협할 수 있음을 각인시켰다. 스위스의 로슈와 노바티스, 프랑스의 사노피,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 독일의 바이엘 등 유럽 제약 대기업들은 수십 년간 구축된 글로벌 분업 체계가 흔들리고 있음을 직면하게 됐다.

트럼프 발언이 제약업계에 큰 타격을 주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의약품 생산은 활성 성분 제조, 포장, 임상 시험 등 공정이 전 세계에 걸쳐 분산돼 있어 관세가 물류와 이익 흐름에 직접 영향을 준다. 둘째, 다국적 제약사 이익 상당 부분이 미국에서 발생하는데, 미국은 약가 규제가 느슨해 관세와 가격 인하 요구가 이중 압박이 된다. 셋째, 불확실한 경영 환경은 주가 하락과 자금 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트럼프는 이러한 관세 인상이 유럽 기업보다 미국 제약사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세계 상위 10대 제약사 중 절반 이상이 화이자, 머크, 릴리 등 미국 기업이며, 무역 보호주의가 이들에 혜택을 줄 가능성이 높다.

유럽 제약사 경영진은 신중하면서도 우려를 표했다. 노바티스 최고경영자는 미국 정책을 면밀히 주시하며 미국 내 생산 투자 확대가 대응책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고, 바이엘 최고경영자는 관세 인상이 경제적 의미가 없으며 환자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로슈는 미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사태는 환자, 정치권, 투자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단기적으로는 의약품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며, 중기적으로는 생산 거점이 미국으로 이전돼 글로벌 생산 효율성이 떨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제약사들은 동맹을 강화하고 현지 생산 전략과 정치 로비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유럽 제약업계는 공포보다는 현실 수용을 선택했다. 이는 생산 능력 재배치와 위험 회피 전략을 뜻하며, 정치권은 일방적 정책 결정의 최종 비용이 결국 환자에게 전가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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