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수입 구리 제품에 대해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글로벌 구리 시장이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관세 부과 소식이 알려지기 전부터 시장은 무역 전쟁 가능성을 우려하며 긴장 상태였지만, 막상 관세가 공식화되자 구리 가격은 급락으로 반응했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가 실제로는 일부 구리 반제품에만 적용되고, 원광 및 주요 원자재에는 예외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더치인터내셔널에 따르면, 관세는 동관, 동선, 동봉, 동판 등과 같은 반제품 및 배관 부품, 케이블, 전기 커넥터 등에 적용되지만, 구리광석, 정광, 술포늄, 음극동, 양극동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전체 구리 제품 중 상당 부분이 관세 대상에서 제외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전부터 트럼프의 보호무역 기조를 예상한 시장은 이미 프리미엄을 반영한 가격 움직임을 보여 왔다. 미국 내 구리 가격은 런던금속거래소(LME)보다 28% 높은 프리미엄을 형성했으며, 트럼프의 발표 이후 뉴욕 상품거래소(COMEX)의 가격 프리미엄은 다소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리는 건축, 산업, 기술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핵심 원재료로 쓰이기 때문에 경제 전반의 수요와 밀접하게 연동된다. 특히 구리 생산은 칠레 등 소수 국가에 집중되어 있어 공급망의 유연성이 낮고, 가격 변동성이 크다.
2024년에는 미국 경제 성장과 이에 따른 수요 폭증, 칠레 광산의 공급 제약이 맞물리며 구리 가격이 급등했다. 당시 국제구리산업협회(ICSG)는 전 세계 구리 시장이 약 37만 톤의 공급 부족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높은 가격이 생산량 증가를 유도하며 구리 생산은 5% 이상 늘었고, 아시아의 수요 둔화와 맞물려 공급 과잉 우려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의 관세 발표가 다시 시장에 불확실성을 더했다. 트럼프는 2월부터 구리 수입 조사에 착수했으며, 당시 시장은 모든 구리 원자재에 25%의 관세가 부과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의 의도는 미국의 수입 의존도를 줄이고, 자국 내 생산을 자극하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미국 기업들은 관세 시행 전에 구리를 대거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창고에 사재기가 일어났다. 보성그룹의 스위스 분석가는 "이러한 수요 급증은 실제 소비 때문이 아니라 관세를 우려한 금융 거래상의 대응이었다"고 분석했다.
현재 시장의 반응은 이중적이다. 겉으로는 50% 관세가 강력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제품이 면제 대상이기 때문에 관세 충격이 완화된 상태다. 동시에 관세 시행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시장에 일종의 안도감도 퍼지고 있다. 대량 주문과 사재기 단계는 종료되었고, 시장은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현재 미국 내에 이미 60만 톤의 구리가 사재기된 상태여서, 관세로 인한 영향이 실제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향후 관건은 사재기 효과의 해소라고 설명했다. 이 기관은 주요 수입국인 미국이 갑작스럽게 재고를 채운 만큼, 향후 구리 시장에 공급 과잉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가격 하락의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사례는 트럼프의 무역 정책이 시장에 얼마나 급격하고 예측 불가능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할 때, 향후 정책 변화에 따른 파급 효과는 여전히 시장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