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양국이 추진해오던 재무·통상 수장의 2+2 통상협의체 구상이 사실상 불발됐다. 한국은 반도체, 공급망,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첨단산업 통제를 포괄하는 전략 통상 협의 채널로 ‘격상’을 시도했지만, 미국은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상무부, 국무부 모두 '시기상조' 또는 ‘의제 협의 미흡’을 이유로 들었지만, 이것이 단순한 실무 조율 실패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협상은 계속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안보분야의 안정적 에너지가 타 분야의 선순환적 효과를 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은 지금 전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과 미중 전략경쟁 구도 속에서 ‘중간 외교’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2+2 통상협의체는 바로 그 일환이다. 미국과의 협의 구조를 제도화함으로써 수출 규제 같은 이슈에서 선제 대응의 통로를 확보하려는 의지였다.
하지만 미국은 달랐다. 미국의 통상 전략은 점점 더 자국 우선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IRA도, 반도체 지원법도 동맹에 대한 배려보다는 미국 내 고용과 투자 유치에 방점이 찍혀 있다.
미국은 지금, 동맹은 안보에서만 강조하고, 통상에서는 선택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한국이 제안한 2+2 틀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협상 테이블에 너무 많은 명분을 제공하는 구조일 수 있다. 한미 관계는 겉으로는 견고하다. 하지만 첨단산업·통상 영역으로 들어가면 ‘이익 불균형’이 뚜렷해진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반도체 지원금에 조건 없이 응할 수 없고, IRA에 따른 불이익도 누적되고 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양자 협의 틀에서 포괄적으로 해결하고자 했지만, 미국은 이를 ‘법적 문제’로 선을 긋는다.
이 구조 자체가 한미관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은 협의체를 통해 제도적 안정망을 원하지만, 미국은 통상 문제를 전략 도구로 활용하려 한다. 즉, 한국이 요구하는 건 '공조의 틀'이고, 미국이 원하는 건 '통제의 유연성’이다.
미국은 일본과는 경제안보 프레임을 공유하지만, 한국에는 보다 선별적이고 도구적인 협력만을 허용하고 있다. 이번 2+2 협의 불발은 그 차이를 확인시켜주는 대형 사건이다.
대통령실과 정치권은 이를 단순한 실무 실패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통상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협의 구조를 ‘제도화’하고, 선의에 의존하지 않는 실리 중심 외교를 확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으로 이용당하는 ‘가교’가 아니라, 줄다리기의 로프가 될 수 있다.
한·미 관세협상은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과 전략산업 경쟁 속에서 어떤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미국은 이제, 전략 파트너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구분하고 있다.
트럼프대통령은 25일 8월1일까지 무역 상대국과 관세 협상을 끝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대목에서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일본, EU, 캐나다, 중국 등 주요국들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면서 한국은 따로 거론하지 않은 부분이다.
이재명정부는 스스로 묻고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에게 전략적 동맹인가, 아니면 전략적 자산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다음번엔 ‘협의 불발’이 아니라, ‘관세폭풍’이 직구로 날아올 수 있다. <김창권 大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