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확보 vs 관광 경쟁력 저하"

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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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소비세(10%) 면제 제도의 폐지를 검토 중이다. 재정 적자 확대와 면제 제도의 남용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지만, 엔화 약세에 힘입은 관광 수요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최근 아소 다로 자민당 수석고문은 세제개편 회의에서 "연간 2000억 엔(약 1조 8000억 원)에 달하는 관광객 소비세 면제를 폐지하면 재정 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은 일본 관광객 수가 4월 사상 처음 월간 300만 명을 돌파하고, 연간 관광 소비액이 8조 엔(2023년 기준)을 넘어선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 강화를 우선시하는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다.

문제의 핵심은 시스템 남용이다. 자민당 조사에 따르면, 1억 엔 이상 고액 쇼핑을 한 외국인 690명 중 90%가 면세품을 일본 내에서 재판매하는 등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도쿄 공항 세관 샘플 검사에서도 9명이 총 33억 엔 상당의 면세품을 반출하지 않고 3억 4000만 엔의 세금을 회피한 사례가 적발됐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2025년 11월부터 공항 내 환불제로 전환할 계획이지만, 아소 고문은 "사기 행위를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며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번 논의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정치적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 관광 과잉으로 인한 '오버투어리즘'이 사회문제로 부상하는 가운데, 정부는 세제 개편을 통해 지방 관광 인프라 확충 자금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국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충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엔화 약세로 이미 저렴해진 일본 쇼핑의 매력이 소비세 면제 폐지로 반감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싱가포르 관광객 차이옌링 씨는 "면세 혜택이 없으면 대량 구매를 재고할 것"이라고 말해 소비 심리 위축을 예고했다. 일본 관광청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 지출 비중이 전체 소비의 34%로 가장 높아 정책 변경의 파장이 클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세수 확보보다 스마트한 면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국의 K-TAX REFUND처럼 실시간 전자 환급제 도입이나 고가품 구매 시 세금 신고 의무화 등 선진국 사례를 벤치마킹해 관광 경쟁력과 재정 수입의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 정부는 내년 4월 개정 세법을 마련할 예정으로, 관광 산업 관계자들의 반응을 고려해 정책 완성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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