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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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을 높이고 공경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 국가기관의 장을 지낸 고곱공무원 출신인 70대가 최근에 자기 친구에게 “조상 산소를 다 파서 화장해서 강물에 뿌려 버려야겠다”고 했다. 

그 친구가 “왜 그렇게 하려고 하느냐?” 하니깐 “해마다 묘사 등이 부담이 되어서 그렇다”고 했다. 

또 한 사람은 역사교사를 하다가 대도시의 공립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분이 “제사 때문에 귀찮아서 못 살겠다”라고 짜증을 냈다. 

위의 두 사람은 최고의 식자층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기 조상에 대한 생각이 이러니 일반 사람들은 어떠할지 가히 짐작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여느 나라에 못지않게 족보(族譜)를 잘 정리해 온 전통이 있다. 

족보가 위조가 있는 등 약간의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의 혈통과 출신을 알려주는 중요한 작용을 한다. 자기의 역사인 동시에 한 집안의 역사다. 

타향에서 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몇 마디만 나누어 보면 어느 할아버지의 자손이고, 어디서 갈라져 나왔으며, 자기와 몇 촌 간인지 알 수 있다.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고, 문화적으로 많은 교류가 있었던 중국 사람들도 우리만큼 족보를 중시하지 않았다. 

더구나 촌수(寸數)라는 말 자체가 없다. 삼촌, 사촌 하면 중국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모른다.

촌수에 대해서 역사를 전공하는 중국 교수에게 설명해 주었더니 아주 훌륭하고 편리한 호칭법이라고 찬탄한 적이 있었다.

보통 5대 이상만 올라가면 잘 모른다. 필자와 가까이 지내는 중국의 교수들 가운데 자기 조상을 모르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1981년 겨울, 독일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보르노 박사가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

돌아가기 직전에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우리나라 기자가 “앞으로 한국이 어떻게 하면 잘 되겠습니까?”라고 하자, 

보르노 박사는 “한국은 다른 것은 할 것 없고 지금껏 해온 것처럼 한국인의 족보를 잘 지켜나가면 됩니다”라고 했다. 

한국 기자들은 전혀 예상 밖의 답을 듣고 어리둥절하였다. 

우리나라 사람이 별로 중시하지 않거나 혹은 낡은 제도로 여기는 족보를 서양의 세계적인 학자가 왜 그렇게 칭찬을 했을까? 

서양학자가 보기에 국가와 사회와 가정의 질서를 잡아 주고, 개인을 도덕적으로 바른 길로 인도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서 족보의 기능을 매우 높게 보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자기의 조상을 생각하고, 자기의 후손을 생각한다.

“내가 이런 언행을 하면 조상들에게 욕이 되지 않을까? 

먼 훗날 나의 후손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라고

그러니 말 한마디, 발 한 걸음 옮길 때도 신중히 하고 한번 더 생각하고 돌아봤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에게는 이런 관념이 없다. 

오늘날 범죄자가 증가하고 사회가 혼란한 것은 가정에서의 교육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가 책임지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사람이 있지만 학교가 교육하고 책임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사람의 기본은 집에서 이루어진다. 보통 남을 욕할 때

“누구 자식인지, 참 못됐다?”, 

“누구 집 자식인지, 본데없다”라고 하지.

“어느 선생 제자인지 참 못됐다” 라고는 하지 않는다. 

족보를 만들어 자기가 누구의 후손이고, 누구의 자식인지 그 사람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면, 사람이 함부로 처신하지 못한다. 

또 옛날에는 대부분 동족 마을을 이루어 살았기 때문에 동네 안에서 문밖에 나가도 모두가 할아버지, 아저씨, 형님, 동생, 조카 관계이기 때문에 감히 함부로 하면서 살 수가 없다.

훌륭한 조상이 있으면 그 행적을 새긴 비석을 새기고, 학문이나 덕행이 뛰어난 조상은 후손들이 유림들과 협력하여 서원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이런 것은 단순히 조상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고, 훌륭한 조상을 교육의 자료로 활용하여 후손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것이다. 

조상을 다 버리고 도시에 나와서, 문밖에만 나가면 어디 출신이고 누구 집 자식인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쉽게 범죄행위를 할 수 있고, 언행을 함부로 하기 쉽다. 조상을 존경하고 높이는 좋은 전통이 너무 빨리 무너지는 것이 안타깝다. 

좋은 전통마저 다 버리는 것이 발전이고 개혁이라면 큰 착각이다.

최원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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