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만약 당신이 미얀마를 여행할 계획을 갖고 계시다면 이 글을 두세 번 읽으신 후 실행하실 것을 권합니다.

지구 상에도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필자는 지금까지 수십 여년을 해외 오지로 떠돌면서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지역의 특산물들을 연구하고 개발하는데 힘써 온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수천 여곳을 다녀보았지만 미얀마처럼 강한 매력을 느낀 곳도 없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미얀마라고 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1983년도에 북한의 소행으로 발생한 아웅산테러를 기억하고 1960년대부터 시작된 군부독재를 연상하면서 은둔의 나라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미얀마는 국민소득이 1300불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국민소득이 낮은 것과 국민들의 정신수준은 절대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얀마에서 오랫동안 주민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는 중에 체험적으로 깨닫습니다.

그들의 정신세계 수준은 지구 상의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높았다는 뜻입니다.

미얀마는 국토면적이 667,000km²로서 우리 남북한을 합한 면적보다 약 3배가 넓고, 해발 6,000m가 넘는 히말라야 산맥의 만년설지대로부터 끝없이 펼쳐진 평야지대, 그리고 수천 km에 이르는 해안선 등 자연환경도 좋고 찬란한 불교유적 등 문화, 학술적으로도 큰 연구가치를 지닌 매력있는 나라입니다.

지구 상 대개의 나라들이 그랬듯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침탈의 피해를 당한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광요(李光耀)가 1959년도에 싱가포르의 수상으로 취임한 후 "싱가포르를 양곤 정도로 발전시키겠다"고 했을 만큼 양곤은 195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아시아에서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대단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지도자를 잘못 만난 탓에 미얀마의 시계는 1950년대에 멈춰선 채로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어디까지나 현대과학문명을 지나치게 수치화 시키거나 계량화 한 시각으로 보았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단순히 국민소득수준이 낮고 문명의 혜택이 부족하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미얀마를 업수이 여길 수 없다는 사실은 미얀마에서 단 한 달 정도만 머물면서 그들과 눈높이를 맞춘다면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얀마의 농어촌 지역에서 장기간 머물다보면 자연스럽게 미얀마인들의 사상이나 철학을 엿보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사업의 성격 상 농촌이나 어촌, 산촌지역을 주로 찾아가야하는 필자에게는 미얀마라는 나라에 대해 깊이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가 부여된 것 같아서 참 다행스런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산하(山河)를 주유(周遊)하면서 조금만 눈여겨 보면 미얀마 국민들의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이 금방 눈에 띕니다.

필자가   오래 전부터 장기간 머물렀던 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초등학생 시절 학교 뒷편 잔듸밭에 서 있던 백엽상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미얀마에서는 그 백엽상 크기 정도의 목재로 된 그늘막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세워놓고 그 안에 20리터 쯤 되는 진흙으로 빚은 단지에 물을 담아서 물컵을 함께 놓아두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4계절이 거의 여름이다시피한 열대지방에서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목이 말랐을 때 물을 마실 수 있게 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훈훈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마을의 귀퉁이에 있는 나뭇가지에는 벼 이삭 다발이 매달려 있는 것을 흔히 목격합니다.

들판에 곡식이 없는 시기에 날아가는 새들이 쪼아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 역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그들의 정신세계가 수준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경제적으로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동물들을 챙긴다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미얀마에는 도시든 시골이든 조금 높은 곳이나 위치가 괜찮아 보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황금 빛 불탑이 있습니다.

그들의 종교관은 경외심을 느끼게 할 정도입니다.

주로 음력 보름이나 매주 토요일 새벽에는 절에서 집회가 있는 날인 듯 했는데 그 절에 다니는 신도들은 물론이거니와 길을 지나는 필자 같은 이방인에게도 정성껏 식사를 대접하는 모습에서 또 감동을 느낍니다.

어느 날이든 이른 새벽에는 붉은 색 가사(袈裟)를 걸친 수십 여 스님들께서 양은으로 만든 커다란 그릇을 하나 씩 안고 일렬로 줄을 지어 동네를 순회합니다.

이 때 주민들은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한 후 밥이나 과일 등 여러 음식을 스님들에게 올립니다.

이 음식들을 스님들께서는 대중공양(大衆供養)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스님들은 신발을 신지않고 맨발로 다니시는데 발바닥이 성치 못할 것 같아서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불교의 정신세계가 그대로 실생활 속에 녹아든 국가로 정신문명이 발달한 국가라는 사실입니다.

배대열 칼럼니스트 BDYTYY@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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