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선진국일수록 기부문화가 정착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부가 자신이 비록 일구어 낸 자산이지만 사회를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데 활용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의 기부문화는 선진국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치고 있습니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의 세계 나눔 지수(World Giving Index) 보고서를 보면 2009∼2018년 10년 누적 기준으로 한국의 기부지수 점수는 34%, 순위로는 126개국 중 38위 입니다.

이와 관련 '수백억원대 부자' 할머니의 정신적으로 "가난한 삶"이 모 지방 도시에서 회자 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어느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입니다.

수 백억원대의 자산을 가진 부자이지만 정신적으로는 거지의 삶을 살으시기에 안따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삶을 사는것이 잘 사는 것인지 인생에 있어서 정답은 없을 것 입니다. 

그러나 남을 위한 삶을 사는것은 분명 아름다운 삶일 것 입니다. 

권력이나 가진것이 많다고해서 남을 돕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돈을벌어 성공했으면서도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돈을 벌었지만 제대로 쓰지못하고 초라하게 사는 인생을 검소하다고 표현한다면 지나침이 있을까요?

할머니는 남편을 젊은시절에 일찍여의고 다섯명의 자녀들을 열심히 키우며 악착같이 세상을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머리가 비상하였고 셈이 빨랐으며 투자의 안목도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먹고살기 위해서 화장품영업과 보험영업 식당과 옷가계등 안해 본 일이 없을정도로 검소한 삶을 살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일정한 돈이 모일때마다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 하였습니다. 

돈이 모일 때마다 건물과 토지를 닥치는데로 사들이며 나름 마음속의 행복함과 만족함을 누렸습니다. 

건물의 세입자와 토지의 임대세입자 인원수도 엄청 늘어났습니다. 

그 많은 임대세입자를 혼자서 관리한다는 것은 이제 포화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부동산 관리업체에 일임하여도 될 테인데 수수료가 아까워 당신이 직접 관리하였지만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모  지방의 남부시장 상가에서부터 중앙시장및 인근의 수십개의 상가와 건물, 국립 지방대병원 근처의 원룸과 약국건물. 의료기건물. 중국집 건물.시내의 대형건물과 토지,  신시가지의 신축건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더욱 놀랄일은 그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였지만 은행에 대출이나 설정은 어느 곳 하나 없는 빚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여기까지는 할머니의 부동산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사실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할머니의 성공적인 삶의 인생을 부러워 하거나 참 열심히도 살았음을 느끼실 것 입니다. 

할머니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 맛있는 것을 사먹거나 허투로 돈을 낭비하거나 치장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행색은 늘 초라하였고 상가 거리에 빈 박스와 빈병이 버려져있으면 자신의 작은 손수레에 싣기도 하였습니다. 

가끔은 택시도 타기도 하였지만 할머니의 부동산이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당신의 건물이 보이고 들여다보고 가야하기에  시내를 거의  걸어다니셨습니다. 

할머니의 수첩에는 맞춤법도 틀린 월세 일정표가 각 지역의 본인소유의 부동산마다 빼곡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많은 부동산들에 대한 주소와 입주업체 층별 보증금과 월세 내역등은 정확히 모두 암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할머니의 머리는 비상하였고 지혜도 있었습니다. 

할머니 소유의 건물에 세입자가 하루만 월세가 늦게 입금되어도 세입자는 밤낮으로 수십통의 독촉전화를 받아야 했고 다음 날 새벽같이 직접 가계를 찾아와 난리를 피웠습니다. 

건물에 누수가 생기거나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하여도 할머니는 모두 나몰라라 외면 하였습니다. 

그것은 세입자들이 고쳐쓰거나 아예 관리를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할머니의 피도눈물도 없는 세입자에대한 가혹한 갑질은 계속되었습니다. 

계약기간이 끝났는데도 제대로 보증금을 돌려주거나 기한약속도 없이 막무가내로 재 계약을 하라며 재 계약시 추가 월세를 인상한다는 조건도 붙였습니다. 

그러니 어느 세입자가 그러한 조건으로 재계약을 할 것이며 할머니와의 인연을 맺으러 하겠습니까?

할머니의 자녀들은 모두가 안정된 삶을 살고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의사와 금융회사임원 그리고 교수등의 훌륭한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더욱이 할머니는 자식들에게도 매월마다 일정금액의 용돈을 또 받고 계십니다. 

이 또한 용돈이 늦어지면 불호령이 떨어지곤 하였습니다. 

또한 건물세입자들은 할머니와의 대화가 통하지 않다보니 상기의 자녀들에게 전화를 해 대었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은 "저는 모르는 일이니 어머니에게 전화하세요"ᆢ하며 일방적인 통화 거부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세입자들에게 엄청많은 전화를 받다보니 이제는 스트레스가 쌓여 거부를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할머니에게 코로나 영향은 건물세입자들에 대한 매출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급기야 계약기간이 끝나자 보증금 반환소송을 하게되고 건물에 가압류를 하게되자 그때서야 보증금 반환을 하면서도 악착같이 한달 분 추가 월세를 더 받아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할머니의 건물들은 세입자들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문에 누구하나 입점 계약을 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결국은 할머니의 건물 반 이상은 재계약을 하지않고 빈 건물과 빈 점포로 썰렁하게 임대 현수막만 나부끼고 있습니다. 

신축한 신시가지 대형건물과 시내  대로변의 입지좋은 건물도 모든 세입자가 나가고 건물전체가 통째로 비워져 있습니다. 

이에 할머니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되었고 급기야는 치매가 찾아오기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건물과 부동산을 8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매입하기만 하였지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절대로 매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모원장님은 그분의 허름한 부동산을 매입하여 새롭게 병원을 증축할 예정으로 꾸준히 접촉을 하였지만 평당 2천만원을 달라는 상식에 맞지않는 주장으로 속앓이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동안 할머니께서는 필자가 보기에 정신적인 강박관념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손을 움켜 쥘 줄은 알았지만 절대로 펼줄은 몰랐던것은 그동안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아이들을 공부시키며 세상에 동화되지 못하고 가까운 친구나 대화 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식들도 모두가 먹고살만하니 어머니의 재산에 별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세입자들의 항의전화에 오히려 귀찮아 했던 것입니다. 

할머니는 오로지 부동산을 늘여야 한다는 일종의 정신적인 강박관념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최근 들리는 말에의하면 치매가 더욱 심해지고 건강이 안 좋으셔서 요양병원에 계신다는 말이 들리기도 하였습니다. 

무엇이 할머니의 삶을 이렇게 기구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맛있는 먹을 것 입을 것 여행 등 그러한 것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고생 고생만 하다가 결국은 그 많은 수 백억원대의 재산은 어떻게 정리가 될지 필자는 걱정아닌 괜한 걱정을 해보게 됩니다.  

자식들에게도 외면을 받아온 할머니의 재산은 당연히 자식들에게 유산 상속되어 나누어지겠지만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고생된 슬픈 삶을 조명해보면 씁쓰레한 마음이 드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요? 

필자는 그동안 할머니 건물에 세입하여 들어와 대부분 불편을 겪었을 분들에게 할머니의 말도 안되는 갑질을 이제는 용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찌보면 이 사회의 많은 갈등 요소가 할머니에게 간접적인 피해자로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이 사회는 갈수록 삭막해지고 인간적인 정이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어차피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 입니다.

내가 이룬 부 어떻게 보면 근검절약 해서 띠끌처럼 쌓아온 축적물 입니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돈을 쓴다"는 속담처럼 벌은 돈을 어떻게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달라집니다.

일시적으로  사는 길과  영원히 사는 방법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올바른 곳에 어렵게 벌은 돈을 사용할 줄 아는 진정한 용기를 지닌 이가 바로 참 사람입니다.

이형권 칼럼니스트 leehyung@nvp.co.kr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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