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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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아베사이(Abesai) 웹사이트가 11월 10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글로벌 산업계가 구리 공급 부족이 향후 에너지 전환과 기술 혁신 전반에 심각한 제약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화와 신기술 도입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구리는 단기·중기·장기 모두에서 핵심 전략 자원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공급 위기가 빠르게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프랑스 오필(OFI) 자산운용의 원자재 담당 이사 봉야만 루베는 “구리는 전력 시장의 심장”이라며 “에너지 시스템은 물론,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기술 발전의 모든 분야가 구리를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풍력 터빈 한 대에는 최대 5톤의 구리가 사용되며, 전기차 한 대는 내연기관 차량보다 네 배 이상의 구리를 필요로 한다.

루베는 향후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전 세계 전력망 규모가 현재 7천만 km에서 1억 4천만 km로 ‘두 배’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상황은 우리가 이미 공급 부족 위기를 향해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며, 여러 프로젝트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현재 운영 중인 구리 광산은 약 250개 수준이지만, 탈탄소 목표를 달성하려면 80개의 신규 광산이 추가로 필요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새로운 광산 하나를 개발하는 데 평균 17년이 걸린다고 설명한다. 루베는 “이미 늦었다”며 “2030년에는 20%, 2035년엔 30%의 공급 부족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위스 폰토벨(Vontobel) 자산관리의 원자재 이사 크리스틴 호트너는 현재의 위기가 단순히 신규 광산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와 칠레 등 주요 생산국에서 광산 폐쇄·감산이 잇따르고 있으며, 환경 규제 강화와 반(反)광업 입법으로 채굴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요국들이 향후 공급 불확실성에 대비해 구리 비축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프로젝트가 직접 중단되는 ‘물리적 부족’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평가하면서도, 지정학적 리스크와 광산 폐쇄, 무역 분쟁 속 관세 경쟁이 향후 공급망을 크게 흔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구리 가격 급등이 수요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전기차·재생에너지 산업처럼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분야에서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호트너는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면 프로젝트의 경제성이 악화돼 기술 보급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일정 수준의 가격 상승은 시장 균형을 맞추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고 평가했다. 루베 역시 “공급이 늘지 않는다면 결국 수요를 줄일 수밖에 없다”며 “수요 억제의 유일한 방법은 가격 상승”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는 구리 가격 급등이 신규 광산 개발과 기존 광산의 확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가격뿐 아니라 규제 환경의 개선도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구리 재활용 확대 역시 핵심 전략으로 꼽힌다. 프랑스 신에너지연구소(IFE)는 2050년경 기존 구리 자원의 90% 이상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재활용 산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구리 재활용은 전 세계 공급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향후 시장 균형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의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구리 공급 위기는 이미 구조적인 문제로 자리 잡고 있으며, 글로벌 산업계는 이 위기가 자칫 기술 혁신의 추진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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