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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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부동산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 가운데, 한때 기피 대상이었던 ‘사고 물건(事故物件, Jiko Bukken)’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살인, 자살, 고독사 등 사건이 발생한 이른바 ‘사고주택’이 이제는 합리적인 가격과 투자 수익률로 젊은 세대와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고 물건’은 과거 심리적 이유로 거래가 어려웠지만, 부동산 가격 급등과 공급 부족 속에서 그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 일본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독거 노인이 전체 가구의 약 14%를 차지하며, 향후 20년 내 20%로 늘어날 전망이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인해 ‘사고 물건’은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도쿄 부동산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2025년 5월 기준 도쿄도 내 70㎡ 규모 중고 아파트의 평균 거래가는 1억 90만 엔(약 88만 싱가포르 달러)으로, 전년 대비 30% 이상 급등했다. 건축 자재와 인건비 상승, 엔화 약세로 인한 외국인 투자 확대가 가격 상승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높은 집값 부담에 일부 젊은층은 ‘사고 물건’에 대해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을 포함한 해외 투자자들은 시세 대비 20~30% 저렴한 가격과 잠재적 수익률에 매력을 느끼며 적극적으로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부동산 중개인에 따르면 살인 사건이 발생한 주택은 통상 시세의 20% 이하로 거래되며, 일부는 매수자가 없을 정도로 가격이 하락한다. 반면 자살이나 고독사 등 기타 사고의 경우에는 약 20% 수준의 감가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심리적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일부 부동산 업체는 ‘무이상(無異常) 증명서’ 발급 서비스를 도입했다. 전문 조사관이 열 감지기나 카메라를 활용해 장시간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이상 현상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증명해 구매자에게 안심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거래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이 존재한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약 2만 1,900건의 사망 사례가 사후 8일 이상이 지나 발견됐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고독사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집주인들은 고령 세입자에 대한 임대를 꺼리고 있으며, 사고 발생 시 자산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일본 국토교통성은 2021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사고 발생 3년이 지난 주택은 ‘사고 물건’으로 분류하지 않고 거래를 허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다만 부동산 중개업자는 여전히 잠재적 구매자나 세입자가 요청할 경우 주택의 과거 이력을 사실대로 설명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고령화로 인해 ‘사고 물건’은 피할 수 없는 시장 현상이 되고 있다”며 “투명한 정보 공개와 합리적인 가격 조정을 통해 오히려 새로운 부동산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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