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팔에서 역사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전직 대법원 수석판사 수실라 카르키(Sushila Karki)가 임시 정부 총리로 취임하며 네팔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 지난 9월 12일 저녁, 카르키는 카트만두 대통령궁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대통령실은 같은 날 밤 카르키 총리의 제안에 따라 연방 의회 하원을 해산하고, 오는 2026년 3월 5일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임시 정부는 향후 6개월 내에 선거를 조직해야 한다.
이번 조치는 수도 카트만두를 비롯한 네팔 전역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소요 사태 이후 내려졌다. 젊은층이 주도한 반부패 시위를 군경이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소 51명이 사망하고 1,300명이 부상당했으며, 국회의사당과 정부 청사, 호텔 등 주요 건물이 방화로 파괴됐다. 이로 인해 시민들의 분노가 커지자 올리 총리는 지난 9일 사임을 발표했다.
카르키 임명은 바우델 대통령, 육군 총사령관, 청년 시위 지도자 간의 치열한 협상 끝에 이루어졌다. 그는 네팔 최초의 여성 대법관 출신으로, 재임 시절 부패 장관을 엄정히 처벌해 ‘청렴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시위대의 지지를 받은 인물이다. 많은 네팔 시민들은 그의 취임을 변화의 신호로 받아들이며 부패 척결과 공정한 정치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헌법 전문가들은 카르키 총리가 직면한 첫 번째 과제로 이번 혼란 기간의 폭력 사태와 공공 재산 피해에 대한 조사, 책임자 처벌을 꼽았다. 실제로 이번 소요 사태를 틈타 1만 2,500명이 넘는 수감자가 탈옥해 치안 악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편, 9월 13일 토요일 현재 카트만두는 비교적 평온을 되찾았다. 군의 순찰 인력이 줄어들고 교통이 정상화되었으며, 시장은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러나 불에 탄 슈퍼마켓과 건물 잔해를 치우는 주민들의 모습은 여전히 최근의 충격을 보여주고 있다.
네팔은 2008년 군주제 폐지 이후 15명의 총리가 교체될 만큼 정치적 불안정이 이어져 왔다. 연고주의와 부패가 만연해 인프라와 경제 발전이 정체되고 있으며, 청년 실업률 또한 심각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네팔 청년 5명 중 1명은 직업이 없고, 1인당 GDP는 약 1,447달러에 불과하다. 취업난 탓에 수백만 명의 청년들이 중동, 한국, 말레이시아 등 해외로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사태와 카르키 총리의 취임은 네팔 정치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