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4일 국회를 통과한 제2차 추가경정예산안에는 주목할 대목이 있다. 한때 폐지되거나 대폭 삭감되었던 대통령실과 검찰 등 4대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 이른바 ‘특활비’가 100억 원 넘는 규모로 부활한 것이다.

 대통령실 몫은 약 41억 원. 국민의 알 권리와 예산의 투명성이 강조되는 이 시점에 다시 등장한 ‘깜깜이 예산’이다.

대통령실은 “책임 있게 사용하고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납세자인 국민이 납득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말은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늘 반복돼온 문구다. 김영란법도, 감사원 감사도, 국회 국정감사도 특활비의 벽 앞에서는 무력했다. ‘책임 있게 쓰겠다’는 말만 남고, 어디에 썼는지는 영원히 비공개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9월 윤석열 정부 시절 대통령실 특활비 82억 5천만원  전액을 삭감한바 있다. 

그런데 정권 교체 후 이재명 정부의 추경안에는 다시 그 예산이 포함됐다. 민주당은 “소명 절차를 거쳤다”고 항변했지만, 야당인 국민의힘은 “내로남불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과연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달랐는가.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특활비가 청와대로 흘러들어간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문제는 단순한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 정치가 여전히 권력을 감추려는 유혹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특활비는 본래 보안상 필요할 때 한정적으로 쓰이도록 설계된 예산이다. 그러나 국내 현실에서는 운영비, 회식비, 생활비 등으로 쓰인 전례가 부지기수였다. 

국민은 더 이상 “기밀”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덮어두는 권력을 신뢰하지 않는다.

국회는 이번 추경에서 특활비 복원을 통과시키면서도, 그 집행 기준이나 투명성 확보 방안은 명확히 담지 못했다. ‘집행 후 소명’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국민은 예산 사용 내역을 알 수 없고, 국회의 감시도 제한적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반복되는 이 풍경은 곧 ‘권력의 공통 언어’가 특활비라는 점을 반증한다. 여든 야든, 권좌에 오르면 이 돈이 필요해진다. 그러니 진짜 필요한 것은 예산의 규모 조정보다도, 원칙에 대한 일관된 태도다.

이제 정치권은 특활비 집행의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실명 기반의 집행 내역 보고, 국회 정보위원회 또는 감사원의 정기 감사, 필요시 공익신고 대상 확대 등 현실적인 대안은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의지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납세자의 눈은 과거보다 훨씬 예리해졌고, 권력의 그늘을 기억한다. 특활비는 단지 돈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원칙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소명하겠다’는 말은 이제 충분치 않다. 말보다 중요한 건, 기록이고 떳떳하고  당당한 공개다.

[김창권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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