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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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 대비 달러 환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가운데, 유럽중앙은행(ECB)은 디지털 유로화 도입이 유럽연합(EU)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할 것이라는 확신 속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년간의 조사를 거쳐 2023년 11월부터 준비 단계에 돌입한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는 유로존 내 개인과 기업이 온·오프라인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높은 보안성과 기밀성 확보를 목표로 한다.

ECB가 디지털 유로 도입을 추진하는 핵심 동기는 미국 주도의 글로벌 결제 시스템 의존도를 줄이는 데 있다. 현재 유럽 내 결제 시장은 비자, 마스터카드, 페이팔, 애플페이 등 미국계 기업이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특히 독일 등 현금 사용이 여전히 활발한 국가들의 우려를 고려해, ECB는 디지털 유로 도입 이후에도 현금이 널리 사용 가능할 것임을 명확히 밝혔다.

2023년 말부터 EU는 결제 서비스 제공업체를 위한 기술 규범인 '규칙 매뉴얼'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이 매뉴얼은 유로존 전체에서 일관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 경쟁을 촉진하며, 시장 분열을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성 과정에서 약 2,000건의 의견을 수렴하여 사용자 편의성 향상, 사기 방지, 분쟁 처리 방안 등이 반영됐다. 규칙 매뉴얼은 2025년까지 지속적으로 보완될 예정이다.

현재 유럽은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 개시 여부를 올해 말까지 결정할 계획이다. ECB는 프랑크푸르트 본부를 중심으로 디지털 유로의 필요성을 유럽 각국에 적극 홍보하고 있으며, 최근 피에로 치폴로네 ECB 집행이사는 유럽 의회 경제통화위원회를 방문해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위원회 의장 오로르 라뤼크는 이를 "유럽의 대형 기술 기업 설립"에 비유하며 높은 기대감을 표했다.

반면, 미국은 디지털 통화 개발 방향에서 뚜렷이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5년 1월 23일, 새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은 모든 디지털 달러 관련 작업을 중단하는 행정명령을 발령했다. 대신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에 가치를 연동해 화폐 가치를 유지하는 디지털 자산으로, 스콧 베이슨트 재무장관은 이를 달러의 글로벌 지위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99.8%가 달러 기반이며, 2024년 3월 기준 시장 규모는 약 2,35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의회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올해 2월, 초당파 상원의원 4인은 '2025년 천재법안'이라 불리는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을 발의했으며, 이는 3월 상원 은행 업무 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어 3월 말에는 하원 금융위원회가 양당 합의로 마련한 '안정화폐 법안'도 통과시키는 등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한편, ECB는 디지털 유로를 국제 결제 통화로 사용하는 데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달러의 패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지는 않지만, 아시아 일부 국가들이 사우디아라비아산 석유 결제에 디지털 화폐를 활용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향후 글로벌 금융 질서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도 주목되고 있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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