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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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부 상호 관세의 시행을 90일간 유예한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4월 11일 보도에서, 이 같은 소식이 처음 전해진 것은 7일 뉴욕 시장이었으나 당시에는 '가짜 뉴스'로 일축되며 다우지수가 급등과 폭락을 오갔다고 전했다.

하지만 9일, 트럼프 대통령의 SNS 발언과 베젠트 재무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유예 조치가 사실로 확인되면서 대형 투자은행들의 시장 전망도 잇따라 철회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전환 배경에 대해 언론은 ‘주가의 변동성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지만, 월가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미국 국채시장에서의 이상 징후로 보고 있다. 최근 미국 국채가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매도가 나타나며, 시장은 트럼프의 관세 수입을 통한 재정적자 보전 계획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국채 시장은 헤지펀드의 공매도 전쟁터로 전락했고,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아시아 시간대 기준으로 한때 3.85%까지 급락했다가 9일에는 4.5%에 육박하는 급등세를 보이며 극심한 변동성을 기록했다.

이런 와중에 헤지펀드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는 등 금융시장 전반에 불안정성이 퍼졌다. 특히 미국 국채시장은 ‘9·11 테러’ 이후 가장 먼저 개장한 시장으로 세계 유동성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더욱 크다. 트럼프의 강경책에 충성해온 베젠트 재무장관조차 금융 시스템 붕괴 위기를 직감하고 강력한 정책 수정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글로벌 투자자들의 미국 이탈 조짐도 가시화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은 10일 다우존스지수가 장중 2100포인트 폭락하는 등 ‘미국 매도’ 압력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특히 백악관이 “중국산 수입품에 145% 관세를 부과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자 주식 시장이 급격히 흔들렸으며, 다우지수는 1014포인트(2.5%) 하락해 전날 상승폭을 모두 반납했다.

골드만삭스의 도미니크 윌슨 애널리스트는 “정책 불확실성이 소비와 기업 활동을 계속 억제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설령 일부 관세가 유예되더라도 미국 경제는 여전히 침체 위험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미국 법과 제도의 불투명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며 국채 및 달러화에 대한 매도 압력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장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90일의 과도기를 설정하고 각국과 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금융시장에 남겨진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미국 국채는 전 세계 금융시장의 기준점이자 주택담보대출 시장 등 실물경제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자산으로, 금리 급등은 금융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학자 에드워드 야드니는 “채권 가디언 체제가 가동 중이다. 투자자들이 매도를 통해 정부의 정책 수정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해석하며, 시장의 제재 기능이 본격화됐다고 밝혔다.

특히 해외 자금 이탈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아시아 주요 중앙은행이 미국 국채 입찰을 피하고 있으며, 유럽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이미 수천억 엔 규모의 미국 자산을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재무성 통계에 따르면, 지난주 일본 투자자들은 외국 채권을 2조 5천억 엔(약 175억 달러) 순매도하며 5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쓰비시 UFJ신탁 뉴욕지점의 요코타 히로야는 “일본계 기관의 보유 압력이 높아지면서 매도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무역 정책은 이제 미국 내외 금융시장의 신뢰를 흔들며 글로벌 자본 흐름의 판도를 재편하고 있다. 정책 불확실성이 불러온 금융 폭풍은 세계 경제 전반에도 장기적인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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