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미얀마의 섬마을에서 밤중에 식량을 도난당하고 망연자실해하는 필자의 일상을 전합니다.
쥐(鼠)까지 사람을 미소짓게 만듭니다.
지난해 9월 말 경부터 비가 그치는 것 같아서 이제 우기(雨期:장마철)가 거의 끝났나 했는데 또 지난 4일 부터 비가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가뭄이 심해서 제한급수까지 실시할 것이라는 뉴스가 들려오고 있는데 미얀마 서북부 지역의 경우에는 지난 여름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인명과 재산에 큰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또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확한 강우량은 잘 모르겠지만 하룻밤 이렇게 퍼 부으면 200mm 정도씩은 쏟아지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황금손처럼 낙천적인 사람도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대기 중에 습도가 높아지면 마음이 울적해지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황금손이 밤에 잠을 자는 내추럴(天然) 호텔도 습기가 없이 까실까실하면 기분이 좋은데 습기가 많고 축축하면 개운치가 않거든요.
황금손이 잠을 자는 숙소를 내추럴 호텔(Natural Hotel)이라 부르는 이유는 기둥과 지붕만 있는 공장 바닥에다 프라스틱 아이스 박스를 여러 개 엎어서 잇대어 놓고 그 위에 대나무로 만든 2500원 짜리 발을 펴놓은 것이어서 그렇게 부른답니다.
사방이 트여있는 까닭에 공기 순환이 잘 되고 마을 꼬마들의 놀이방 역할도 하는 황금손의 호텔은 다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만조(滿潮:밀물로 물이 가장 많이 찼을 때) 시 공장 난간에 걸터앉으면 발에 바닷물이 닿을 정도이고 때로는 젊은 직원들이 일을 하다가도 땀이 나면 바로 달려가서 바다에 풍덩 뛰어들 수 있는 낭만도 있는 곳입니다.
이 호텔의 주방시설 또한 100% 내추럴 입니다.
수박 만한 돌덩어리 5개를 갖다놓고 불을 지펴서 냄비 2개를 얹은 후 밥도 짓고 국도 끓입니다.
땔감은 섬 지역에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가스나 전기밥솥에다 지은 밥보다 이렇게 장작불을 피워 요리를 하고 밥을 지으면 맛이 더 좋다는 느낌이 듭니다.
가끔씩은 청년들이 낚시줄을 던져서 물고기를 낚아주기도 하는데 갓 잡아올린 물고기를 손질해서 매콤하게 매운탕을 끓이면 신선(神仙)이 따로 없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은 작은 섬들을 돌아다닐 때 목숨과 직결되는 귀중한(?) 물건이어서 애지중지하는 것인데 지난 밤에는 중대한 사고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식량창고가 털리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간밤에 해죽순 문제로 다른 섬들을 늦게까지 돌아다니다가 호텔로 돌아와서 허기를 라면으로 때우고 "식량창고"의 문단속을 허술히 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습니다.
평소 쥐들의 습격이 잦아 큰 스티로폼 박스 안에 양식(쌀과 라면 등)을 넣어두고 반드시 뚜껑을 덮어두는데 어젯 밤에는 깜빡했던 것입니다.
9월 21일 출국하면서 라면 두 박스를 가지고 왔었는데 황금손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섬마을에 있는 파출소 소장이 찾아와서 자기는 한국 라면을 좋아한다면서 은근히 바라는 것 같아 10봉지를 뇌물(?)로 바치고 또 지금까지 아껴서 먹던 중에 5봉지 정도가 남아있었는데 그 라면들이 "면"만 송두리째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범인은 <쥐>였습니다.
이 녀석들이 문을 잠그지 않은(뚜껑을 제대로 덮지않은) 식량창고를 습격하여 남은 식량 전부를 훔쳐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이 절도범들이 라면봉지 속에 든 "면"만 훔쳐가고 스프는 그대로 두고 갔다는 점이었습니다.
배대열 칼럼니스트 BDYTYY@nv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