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을 중심으로 한 진영과 신흥국 간의 균열이 심화
유사시 자산을 동결하고 몰수 선례, 달러나 유로화 자산 보유 주저
경쟁 통화체계가 가까운 장래에 달러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은 제한적

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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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크라이나 전쟁은 2년 동안 계속되었고, 미·유럽을 중심으로 한 진영과 신흥국 간의 균열이 심화되었다. '달러 독주' 통화 체제 속에서 아시아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기 시작했고, 그 여세를 몰아 가상자산 거래도 부상했다.

달러를 기축 통화로 하는 통화 체계가 과연 반석처럼 단단할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미·유럽은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러시아 경제 제재의 일환으로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화 자산 약 3000억 달러(한화 약 400조 8000억 원)를 동결했는데, 이 중 상당수가 브뤼셀에 있는 국제결제기관인 유로클리어에 잠재워 있다. 유럽연합(EU)은 이 자금을 우크라이나 지원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는 1월 하순 미 대통령에게 국내에 동결된 러시아 국유 자산 수십억 달러를 몰수해 우크라이나 지원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다수결로 통과시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원조 피로감'이 미·유럽 사회에도 퍼지면서 적 자산을 살리고 재건하는 전략이 매력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유사시 자산을 동결하고 몰수하는 선례를 남길 경우 달러나 유로화 자산 보유를 주저하는 국가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파비오 파네타 전 ECB 상근이사 겸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는 1월 연설에서 "한 가지 통화를 무기화 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매력도를 떨어뜨려 대체 화폐의 출현을 장려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2년 사이 러시아 내에서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2023년 말 현재 모스크바 거래소인 루블화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는 1% 미만이었던 위안화와의 거래 점유율이 최대 40%에 달했다. 이와 함께 루블화 가치는 달러 대비 85%에서 30%로 급락했다. 러시아의 주요 무역 결제 통화도 달러에서 위안화로 바뀌었다.

국제 송금 분야에도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고 있다. 

미·유럽이 러시아 은행을 세계은행간금융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시킨 데 대한 대항마로 러시아가 독자 결제망인 SPFS, 즉 러시아판 SWIFT에 더 많은 국가의 접속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2022년만 해도 SPFS 가입국은 12개국에 불과했지만 올해 1월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참여국은 20개국으로 늘었다.미국과 거리를 둔 국가들이 새로운 결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통화체계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은 아직 상상하기 어렵다.

또한 미국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이사회가 초거량을 포함한 국내 경제·금융시장의 규모와 개방성 등 기축통화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6가지를 제시했다. 현재까지도 미국은 종합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며 "경쟁 통화체계가 가까운 장래에 달러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육박하며 2위인 유로화의 3배에 달한다. 무역거래의 50% 이상이 달러를 사용하고 외환거래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이른다.

그럼에도 달러화의 지배력은 서서히 쇠락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년 전만 해도 70% 수준이었지만 이후 감소 기조로 접어들었다. 호주·캐나다·스웨덴 등의 통화가 '탈(脫)달러' 과정에서 기축통화가 되면서 다극화 추세가 심화되고 있다.

각국이 보유한 달러화 외환은 대부분 미국 채권으로 이뤄졌고, 시장 규모가 크고 유동성이 높아 '대체 불가능성'을 형성해 온 미국 채권의 안전 신화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용평가사 피치가 지난해 여름 미국 국채 등급을 낮춘 이유 중 하나는 재정 문제로 줄다리기를 반복하던 미 의회가 기능 부전에 빠지면서 '미국 재정 정치력의 저하'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2022년 말 현재 미국 채권의 해외 보유 비율은 30%로 10년 전 50%보다 훨씬 낮아졌다.

당장 시장은 11월 미국 대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면 감세 조치로 재정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

에스발 프라사드 미국 코넬대 교수는 "각국이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자산의 비중을 낮추도록 부추길 수 있다."라면서 "달러화 약세는 더 이상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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