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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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로큰롤(rock 'n' roll) 가수였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삶을 반추해 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한창 기세를 드날리던 42세의 나이에 심한 변비 증세로 사망했다고 전해집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본명은 Elvis Aron Presley)는 1935년 1월 8일 미국 미시시피 주 투펄로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는 쌍둥이였지만 형은 출생 후에 바로 사망하였기에 그는 미국 남부의 가난한 백인 가정에서 외아들로 성장했습니다.

엘비스의 어머니는 목화밭이나 방직공장 등을 전전하며 생계비를 벌었고, 그의 아버지는 밀주(密酒)를 제조해서 판매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등 지역사회의 말썽꾼이었습니다.

폭력적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엘비스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의 관계가 매우 돈독했습니다.

1948년도에 엘비스의 가족은 테네시주 멤피스의 빈민가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엘비스는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트럭운전 등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엘비스는 1957년도에 국가로부터 징집영장을 받고 1958년 3월 24일 입대하게 됩니다.

이미 가수로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던 엘비스는 군 당국에서 연예병으로 근무할 것을 권했지만 그는 전투부대로 자원하여 서독으로 배치를 받아 18개월 동안 근무하였습니다.

훗날 아내가 된 프리실라 블라우를 군 복무 중에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가 1960년 3월 2일 전역을 하고 다시 가수와 배우로서 맹활약을 펼칩니다.

군에서 만났던 프리실라와는 1967년 5월 1일 결혼을 하고 1년 만에 딸까지 낳았으나 5년 후에 파경을 맞았습니다.

이혼 후 1968년도에 엘비스는 컴백 공연을 통해 재기에 성공합니다.

1973년도에 하와이에서 있었던 공연은 인공위성으로 생중계가 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 수퍼스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로큰롤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가수로 평가되는데 로큰롤은 195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일어나 세계적인 대중음악의 한 주류를 이룬 연주 스타일과 리듬을 일컫습니다.

로큰롤을 우리는 흔히 록(rock)이라고 부릅니다.

그의 생애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엘비스는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1973년도에만 4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알려진 바로는 각성제의 남용이 몸을 망가뜨린 원인이라고 합니다.

엘비스는 1977년 8월 16일 자택의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회생하지 못하고 불귀(不歸)의 객이 되고 말았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엘비스의 사인을 심장마비로 진단했지만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은 엘비스의 사인(死因)이 극심한 변비로 인한 스트레스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라고 전합니다.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는 약물인 각성제(覺醒劑)는 장(腸)과 신경계에 무리를 줌으로써 특히 변비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엘비스가 죽은 후 그가 살던 테네시 주 멤피스는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의 광(狂) 팬들이 순례하는 엘비스의 성지로 부각되었습니다.

엘비스의 팬들은 엘비스를 두고 왕(The King)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데 엘비스는 로큰롤의 역사에서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인물, 그 장르의 인기를 폭발시킨 최초의 수퍼스타였기 때문입니다.

춤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던 엘비스는 특유의 엉덩이 춤을 개발하여 10대들을 대중음악의 주요한 소비계층으로 이끌어낸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힘든 일, 눈물, 잠 못 이루는 밤이 얼마나 많았는지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로 존재하는데 너무 지쳤습니다" 엘비스가 남긴 이 말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엘비스가 죽지않고 어디선가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는 풍문들이 나돌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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