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역대 왕조의 왕들 중 대왕(大王)의 칭호를 붙여 부르는 왕은 두 분입니다.
고구려 19대 왕이셨던 광개토대왕과 조선시대 제 4대 임금이신 세종대왕이십니다.
그 분들은 재임 중 그만큼 특출한 업적이 있으셨기에 후손들이 "대왕"이라는 극 존칭을 붙여드린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두 분의 대왕들 중 오늘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살핍니다.
원래 왕의 명칭에는 세종이나 세조, 연산군 등 3종류(宗, 祖, 君)의 칭호를 붙이는데 종(宗)은 부자지간 혹은 조손(祖孫) 간에 왕위가 계승되었을 경우에 붙이고, 조(祖)는 형제나 친척 간에 왕위의 계승이 있었을 때 붙이는 칭호입니다.
~군(君)은 재임 중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여 왕의 자리에서 쫓겨난 경우에 붙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제 6대 임금이셨던 노산군(魯山君 후에 단종으로 복위됨)과 제 10대 임금인 연산군(燕山君), 그리고 15대의 광해군(光海君) 등 세 임금이 재임 중 쫓겨난 이유로 ~군(君)의 봉작(封爵)을 받았으나 노산군은 억울하게 왕위를 찬탈당한 것이 인정되어 200여 년 후인 숙종 시절에 단종(端宗)으로 복위됨으로써 연산군과 광해군 등 두 임금만 군(君)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봉작을 받은 것입니다.
광개토대왕은 서기 374년 부왕인 고국양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만 17살 되던 391년에 왕위에 오릅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품성이 강인했으며 리더쉽이 탁월했던 광개토대왕은 따르는 신하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큰 아버지였던 소수림왕이 자식없이 승하하신 후 동생인 고국양왕이 왕위를 이어받아 7년 여를 통치하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고, 뒤를 이어 어린 나이에 왕이 된 대왕이셨습니다.
소수림왕과 부왕인 고국양왕은 내치를 잘 함으로써 정권이 안정된 시기였습니다.
그러한 기반 위에서 왕위를 계승한 대왕께서는 대정복 전쟁을 수행합니다.
대왕께서 친히 전장(戰場)을 누비면서 확장한 영토는 서쪽으로는 북경에 이르렀고 북으로는 오늘날의 몽골을 넘어 러시아 영토인 네르친스크를 한참이나 지난 곳까지 넓혔으며 동쪽으로는 블라디보스톡 부근인 우수리스크에 이르기까지 실로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당시의 영토는 경계선이 분명치 않아서 정확한 면적을 산출하기는 어렵지만 대략적으로 오늘날 한반도 전체 면적의 약 3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광개토대왕이 활약하던 5세기 초에는 세계 최강국의 반열에 고구려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서양의 정복왕으로 불리는 알렉산더 대왕과 비견될 정도로 대단합니다.
민족적으로 긍지를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비(碑)는 그가 세상을 하직한 2년 후인 서기 414년도에 후왕인 장수왕에 의해 도읍지인 국내성에 세워졌습니다.
그 비문에 새겨진 글을 옮깁니다.
"왕의 은택이 하늘까지 미쳤고, 위엄은 온 세상에 떨쳤다. 나쁜 무리를 쓸어 없애자 백성이 모두 생업에 힘쓰고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풍족해졌으며, 온갖 곡식이 가득 익었다. 그런데 하늘이 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나 보다. 39세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시었다"
실로 서글픈 일입니다.
그가 예순까지만 생존하셨더라도 고구려는 중원을 전부 정복하고 최소한 동아시아는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영향권에 놓였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