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제공.
사진=뉴시스 제공.

우리 조상님들께서 최고의 영약(靈藥)으로 여겼던 약재가 산삼입니다.

산삼의 우리말 고유 명칭은 "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 산삼 캐는 사람을 일러 "심마니"라 부릅니다.

심마니의 어원에서 "심"은 삼(蔘)을 뜻하고, 메(뫼)는 마니(꾼)를 줄인 말입니다.

"메"를 일부에서는 "산(山)"이라는 뜻으로 풀이하여 "산에서 삼을 수집하여 파는 상인"의 의미로 심마니가 되었다고 하기도 합니다만 경험을 가진 심마니들은 "메"를 "찾다/캐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심마니"는 "산에서 삼을 찾다" 혹은 "캐다"가 정확한 뜻이라고 위키피디아 한글판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가끔씩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보게되는 "심봤다!"는 표현은 "산삼을 봤다" 거나 "산삼을 캤다"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심"이 산삼을 뜻한다는 내용은 우리 선조들께서 남기신 동의보감이나 방약합편, 제중신편 등의 의서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산삼이라고 부르는 것은 천종산삼(天種山蔘)입니다.

천종산삼은 농가에서 기르는 인삼이나 자연에서 자라던 천종산삼의 씨앗을 먹은 야생동물들이 이동하면서 배설한 것이 발아되어 자연 상태에서 자란 삼으로서 우리가 흔히 산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산삼의 역사를 살펴보면 산삼은 중국의 동북 3성 지역과 한반도, 연해주까지의 훗날 고구려가 관할했던 영토 안에서 주로 서식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만리장성의 축조는 중국 본토와 만주 일대 동북부 사이의 교류가 끓긴 계기가 되었고, 대륙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면서 고구려 영토 안에 한사군을 설치(B.C.108년)하게 되는데 이 때부터 중국과의 교류가 재개됩니다.

이 당시 한반도 북부지방에서 주로 생산되던 산삼이 중국으로 전파되었는데 이후 대 중국 주요 교역품으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훗날 고려시대에 접어든 후에 중국 및 고려의 조정에서 요구하는 산삼의 양은 꾸준히 증가했고 백성들은 산삼을 캐기 위해 깊은 산 속을 헤매야 했습니다.

이러는 과정에서 산삼의 수요는 크게 증가했고, 일부 백성들이 산삼의 종자를 채취해서 밭에 파종하여 재배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중국 이시진이 쓴 "본초강목"에 의하면 14세기 무렵부터 인삼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문답>에는 조선이 연간 수만 근의 산삼을 중국 등지로 수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상인들은 산삼 교역을 통하여 부를 축적하였는데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개성상인의 모태가 될 수 있었던 주력 상품이 산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산삼은 가히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며 인기를 누렸는데 마땅한 치료약이 없던 그 시절 산삼의 위상이 그려집니다.

산삼은 원기를 회복하고 당뇨병을 치료하며 항암, 노화예방, 성기능 증진, 고혈압, 치매, 뇌기능, 면역력 증진, 심혈관 질환, 갱년기 장애, 골다공증, 위궤양 등 거의 모든 질병에 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산삼의 이러한 효능은 주요한 성분인 사포닌과 미네랄 성분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고들빼기나 민들레, 냉이, 도라지 등에도 산삼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사포닌과 미네랄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쩌면  다른 각도에서 분석해보면 산삼의 효능은 다분히 심리적인 측면도 다소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배대열 건강식품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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